총각처녀들이 동경하는 말이 있다. “I do” 이다. 결혼식에서 주례가 “신랑신부는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한국에선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난할 때나 풍족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서로 사랑할 것을 서약합니까?”라고 물으면 “I do”(한국식은 “예)라고 대답한다. “I do” 없는 결혼은 정식결혼 축에 못 낀다.
하지만 요즘엔 “I do” 서약 없이 동거하는 커플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지난 2010년 센서스에서 자신을 ‘기혼자’라고 밝힌 사람은 미국 전체성인들 가운데 고작 절반 정도(52%)에 불과했다. 50세 미만의 남녀 가운데는 거의 60%가 결혼식 없이 파트너와 동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추세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령화와 함께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I do”를 생략하고 동거하는 커플들은 특히 노년층에서 가파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센서스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연령층의 혼외 동거자 수는 2000년 19만3,000여명에서 2010년엔 57만5,000여명으로 늘어나 10년간 3배가량 폭증했다. 불과 한 두세대 전까지도 불륜으로 지탄받기 일쑤였던 혼외동거가 지금은 공공연한 세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노인들이 “I do” 없는 ‘황혼결혼’을 선호하는 이유는 주로 돈 문제 때문이다. 기왕 작성해둔 유언장을 고쳐 쓰는 번거로움이 싫다. 자녀들도 아버지의 정식재혼을 대개 반대한다. 뒤늦게 끼어든 새어머니에게 유산의 상당액을 ‘날치기’ 당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들도 사별한 전 남편의 소셜시큐리티 연금이나 직장연금 혜택이 정식재혼으로 끊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미국인들의 황혼결혼은 대부분 노인아파트 등 공동주거시설 입주자들 사이에 이뤄진다. 평생의 반려자를 사별하고 독수공방에 지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식당, 도서관, 동아리 모임 등에서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눈이 맞아 정을 나누다가 합방하게 된다. 목사의 비공식 축복기도도 받는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할머니들은 대개 할아버지의 성으로 바꾼다.
황혼결혼은 한국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재산문제의 걸림돌이 별로 없어서인지 대부분 정식 혼례를 치른다. 통계청의 가장 최근(2011년 5월)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결혼한 50세 이상 남자는 1만8,791명으로 10년 전인 2000년의 8,928명보다 2.1배 증가했다. 같은 연배의 할머니 신부도 4,145명에서 1만956명으로 10년 새 2.5배가량 늘어났다.
물론 황혼결혼의 급증현상은 황혼이혼의 급증 세태와 동전의 양면 관계일 수 있다. 서울의 경우 결혼생활 20년 이상 부부의 황혼이혼이 결혼 후 4년 내 신혼이혼을 앞질렀다. 노인인구, 특히 예상 여생기한이 긴 노인들이 증가하면서 황혼결혼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완화됐다. 검은 머리가 이미 파뿌리 됐지만 노인들의 황혼결혼은 신혼마냥 축하받는다.
엊그제 마음껏 축하하고 싶은 황혼결혼 소식을 들었다. 약 2년 전 칼럼으로 쓴 ‘죄 없는 자의 고난’에서 소개한 강준식 목사의 재혼소식이었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강 목사는 “서울에서 재혼예배를 올리고 돌아왔다”고 조금 멋쩍게 말했다. 새 부인은 동료목사가 소개해준 또 다른 목사의 누이라고 했다.
강 목사는 희귀병으로 말을 못하고 몸도 추스르지 못하는 부인을 40년간 수발한 끝에 2년 전 사별했다. 부인의 소천에 보름쯤 앞서 전도사였던 장남이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됐다(그는 결국 숨졌다). 부인과 똑같은 난치병을 앓아온 차남도 근육무력 증세가 악화됐다. 성경의 ‘의인’ 욥처럼 죄 없는 자가 받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거부였던 욥은 사탄이 여호와에게 제의한 내기의 표적이 돼 자녀 10명과 가축 떼를 일시에 잃는다. 아내도 하나님을 저주하라며 병든 그를 떠난다. 하지만 욥은 끝까지 믿음을 지켜 사탄에게 패배를 안겨주고 전보다 2배의 축복을 받는다. 강 목사도 그런 축복을 받을 만하다. 그는 독자들이 그동안 보내준 격려와 성원에 감사한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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