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외치는 “불이야!” 이 한마디는 공포의 극치 그 자체다. 그 외마디에 잠자던 사람들이 겁에 질려 집을 뛰쳐나온다. 그런데 이 경우 어느 집에 불이 났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그 집에 도둑이나 강도가 들었을 경우도 있다. 불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이웃의 잠을 깨워 도둑이나 강도를 막는 경우다.

지금 미국 서부 여러 곳에서 특히 요세미티 인근에서 ‘불이야!’ 하고 난리가 났다. 집들이 벌써 상당수 피해를 봤고 국립공원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일대에 사는 사람들의 공포가 이만 저만이 아닐 게다. 나도 몇 년 전에 사는 곳 인근에 산불이 일어 예비 대피령이 내려진 가운데 짐 싸고 밤을 지새운 경험이 있어 요즘처럼 건조하고 기온이 높은 날씨에 이곳인들 불난리가 안 나리란 보장이 없어 슬슬 걱정이 든다.

이번 서부 지역 산불은 대부분 자연 발화에 의한 일종의 천재라고 한다. 사람의 실수로 일어나는 불이라면 막거나 줄일 수가 있겠지만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 발생적이란 데에 심각성이 크다. 그 자연 발화의 원인으로 흔히 지구 온난화를 든다. 어떤 이는 지구가 늙어 자신을 건강하게 지킬 능력이 쇠퇴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거기에는 자원을 마구 개발하고 화석연료를 남용하는 등 인간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지구학대에 대한 앙갚음이리라. 그러니 순전히 산불을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천재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서부 지역의 산불이 기후 온난화가 미래에 가져다 줄 온갖 재앙 가운데 하나를 미리 보여 주는 ‘맛 뵈기’라고 말한다. 어쨌든 우리 후손의 미래가 걱정된다.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천재인 걸....‘ 하면서 소방당국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안쓰럽다.

이태 전 일본에서 일어난 쓰나미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가 났을 때, 어느 목사님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룬 일이 기억난다. 나는 산불이나 쓰나미, 지진 같은 재난이 인간의 죄에 대한 응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세태가 점점 험악해가는 걸 보면서 이러다가 정말 벌 받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캠퍼스에서, 길거리에서, 총기를 마구 휘둘러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하고 심지어는 10대들이 ‘심심해서’ 사람을 쏴 죽였다는 뉴스도 들린다. 정치적, 또는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대규모 폭탄 테러가 곳곳에서 자행되고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다. 인간의 잔악함은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모르겠다. 인과응보라는데 언제고 죄 값을 치를 날이 오리라는 걱정이 든다. 엉뚱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자구의 종말이 불로 인해 오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불로 심판하신다 하지 않았나!지구 온난화로 미래에 닥칠 큰 재난을 막는 일은 전 인류가 공동으로 나서서 해야겠지만, 나는 소박하게나마 산불이 다른 차원의 교훈이나 신의 경고를 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옷깃을 여민다. 그래서 산불도 인간의 사악함에 관계가 있으니, 자연과 인간을 사랑하고 평화롭고 건전한 삶의 터전을 만들도록 노력하면 장차 닥칠지도 모르는 응보를 면할 수 있지 않겠나한다.

견강부회, 억지춘향 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험악한 세태를 경험하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도 해 보자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고, 도둑 막자고 ‘불이야!‘ 하고 외치는 방편으로 하는 말이다. 산불도 겁나고 세태도 겁난다. ‘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