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쳤는데 뭘…”“사이코야 사이코…”
▶ 무엇이, 왜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이해와 배려 없이 경멸·손가락질만… 무보험 저소득층엔 더욱 가시밭길
어느 나른한 초여름 오후, 한 고등학교의 기물창고에서 졸음을 확 깨우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청소기를 꺼내려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간 교직원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한 남성을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무엇인지 단단히 움켜진 그의 한 쪽 손은 온통 피투성이였고, 다른 한 쪽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들려 있었다. 그의 하복부에서도 시뻘건 물감처럼 꾸역꾸역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한 쪽 손에 거머쥐고 있었던 것은 절단된 자신의 생식기였다.
교직원으로 알려진 이 남성은 근처 병원으로 급히 이송돼 응급치료를 받고 의식을 회복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문제의 남성은 생식기 접합수술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자신이 훼손한 하복부에 그 어떤 추가 치료도 해선 안 된다며 수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의사들은 애가 달았다. 시간이 지체되면 설사 절단된 생식기를 접합한다 해도 기능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들은 “현재 환자의 정신상태로 보아 이 같은 문제에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수술을 강행했다. 수술을 성공적이었고, 환자는 그가 버렸던 ‘남성’을 되찾았다.
수술 후 며칠간 병원 임직원들의 화제는 온통 이 남성에게로 집중됐다.
몇몇 의사들은 “양물 접합은 싫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그를 “요즘 보기 드문 지독한 사이코”로 단정지었다.
그가 원하던 대로 접합수술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의견은 분분했지만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그를 향한 동정론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처럼 끔찍한 자해행위를 하게 만들었는지, 그가 얼마나 혹독한 정신적 압박을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의사와 간호사는 암이나 에이즈, 혹은 심장병과 같은 난치병 환자들을 각별히 배려한다. 그들이 고치기 힘든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의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일체감을 갖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신장애를 앓고 있음이 분명한 이 남성에게 병원 관계자들은 적극적인 이해나 따스한 동정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의 바탕에는 거부감과 경멸, 경박한 호기심이 두껍게 깔려 있었을 뿐이다.
끔찍한 자해행위를 불러온 근본원인 따위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그저 무시무시한 광기만이 클로즈업됐다. 병원 의료인들의 눈에 비친 그는 환자가 아니라 그저 ‘미친놈’이었다.
‘불 속으로의 추락: 정신병 의사와 위기에 처한 영혼과의 만남’이라는 책을 써낸 크리스틴 몬트로스 박사는 “모든 종류의 질환 가운데 정신병처럼 제대로 이해를 받지 못하는 병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정신병은 늘 꼬리표처럼 오명을 달고 다닌다.
관련 권익옹호단체를 중심으로 정신병에 관한 인식제고 캠페인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심리적 장애라든지 정신질환이 뇌 속의 생물학적 변화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경험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정신질환 판정기준이 극히 임의적인 데다, 사회적 관습에 종속되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병의 경계를 정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는 뜻이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병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어정쩡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정신병을 병으로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이들은 정신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등의 병원균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정신질환의 대표적 증상으로 꼽히는 사회적 관습에 어긋나는 이상행동과 비표준적 사고j를 어떻게 의학적으로 교정할 수 있느냐고 이들은 반문한다. 의학적 치료가 아니라 환자 본인의 개선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회의론자들의 결론이다.
요약하자면 치료를 필요로 하는 병이라기보다 개인의 개선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해야 할 정서적 행동장애라는 생각이다.
이런 사회적 편견과 그릇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조울증이라 불리는 양극성 장애나 정신분열증에 걸린 환자들은 종종 적절한 치료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히곤 한다.
브라운대학 우렌 알퍼트 메디칼 스쿨의 정신과 부교수인 몬트로스 박사는 그녀의 책 ‘불 속으로의 추락’에서 자신이 겪은 사례들을 소개하며 이들의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그녀의 환자 가운데 한 남성은 심각한 신체이형장애증후군을 앓고 있었으나 여기에 필요한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한 채 자신의 모든 수입을 피부과 치료를 받는데 털어 넣었다.
흔히 BBD 증후군, 또는 추모공포증으로 통하는 신체이형장애증후군은 자신의 외모에 절대 만족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정신병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깔끔한 용모를 지닌 사람이 심한 외모 콤플렉스를 보인다든지 별로 손볼 데도 없는 것 같은데 뻔질나게 성형외과를 드나드는 이른바 성형 중독자들이 바로 이 부류에 속한다.
신체이형장애증후군은 정신질환이기 때문에 성형수술을 아무리 받아 보았자 소용이 없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신과 치료이지 성형과 시술이 아니다.
BDD 증후군은, 별 것 아닌 것 같으나 사람을 위축시키고 대인관계를 나쁘게 만드는 등 삶의 질을 악화시킨다.
몬트로스 박사는 백열전등에서 건전지와 면도칼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건을 닥치는 대로 씹어 삼키는 ‘불가사리 여성’의 사례도 소개했다.
이 여성은 당연히 전문적인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주변인들은 그녀의 이상행동을 ‘믿거나 말거나’ 식의 TV 프로그램에서 흔히 접하는 기벽 정도로 여겼다.
이것저것 집어삼킨 뒤 몸에 탈을 일으켜 병원 응급실을 찾는 횟수가 잦아지자 가족들은 근본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의료보험이 없으니 속수무책이었다.
보험 없이 정신과 치료를 받다간 환자 가족까지 돌고 만다. 저소득층을 위한 안전장치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보험자의 경우 1년에 고작 네 번,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정신건강센터에 예약을 할 수 있다.
생후 15개월된 아들을 죽여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여성 환자는 의료보험의 입원기간 상한조항에 걸려 치료 도중 퇴원해야 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내심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우려를 입증할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몬트로스 박사의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입원치료를 필요로 하는 중증 정신질환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을 서커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흥미로운 ‘괴짜’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다.
몬트로스 박사는 정신과 병동에서 예수를 자처하는 환자를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말한다.
영적 열기에 들뜬 상태에서 정신병동으로 실려 온 콜린이라는 젊은이도 ‘자칭 예수’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예수의 옷차림을 한 채 병동을 누비며 사랑을 설교한다.
콜린은 곳곳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서류철 보관함에서 사랑을 찾아내고, 접는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랑을 본다. 그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미쳐도 곱게 미쳤다”이다.
몬트로스 박사는 아는 사람들로부터 “천재와 광인은 종이 한 장 차이”라든지 “예술적 천재성은 광기를 필요로 한다”는 따위의 말을 자주 듣는다며 “우리 주변에는 잘못된 인식 탓에, 혹은 지나치게 인색한 보험정책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정신질환자들이 너무도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건강한 정신은 건전한 환경을 필요로 한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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