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존경하는 교수님 댁에 갔다가 에밀레종의 비천상 탁본을 보게 되었다. 비천(飛天)은 소리를 연주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인(天人)으로, 신라, 고려 시대의 범종의 조각에 자주 등장하는 문양이다. 특히 에밀레종에 새겨진 비천상은 향로를 받쳐들고 옷자락은 꽃구름과 함께 휘감겨 올라간 우아한 자태로 독일 미술사학자 에카르트가 음악소리가 그림으로 형상화된 것 같다는 극찬을 했다. 나는 탁본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에밀레종 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한참을 그 앞에 서서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소리로 잘 알려진 에밀레종은 외형적 예술가치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어떤 독일학자는 ‘우리나라에 이런 유물이 있으면 박물관 하나를 따로 세우겠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높이 3.75m, 너비 2.2m에 무게는 무려 18.9톤에 달하는 이 범종이 1200년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경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인 러시아의 짜르대종이 완성 직후 깨져 한번도 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나, 1751년에 만들어진 미국 필라델피아의 자유의 종이 두 차례의 재주조 후에도 심한 균열이 생겨 소리를 낼 수 없게 된 것은 현대의 기술로도 금속종의 주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니 에밀레종의 위대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의 종은 ‘코리안벨’이라는 학명을 가질 만큼 독창적인 조형양식을 가지고 있는데, 종의 상단부에 있는 용뉴(종의 고리)가 중국이나 일본의 종처럼 두 마리의 용이 아니라 한 마리의 용과 용통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것은 그 유명한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만파식적은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된다는 전설 상의 피리로 신라가 삼국통일 후 흩어져 있던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 했던 신라인들의 염원에 기인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성덕대왕신종 또한 통일을 위해 전장에서 죽어간 원혼과 유민들의 아픔을 달래고자 했던 위로와 화합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각종 정치, 경제적 사건들로 어지러운 요즘, 우리 사회에도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흩어진 민심을 모아줄 현대판 에밀레종과 만파식적의 울림이 도래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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