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미국 공화당의 깅리치 하원의장은 클린턴 대통령이 공화당 주도의 예산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예산안 처리를 거부했다. 그 결과 두 차례 26일 동안 연방정부가 폐쇄됐다. 1976년 이후 그동안 있었던 17번의 정부폐쇄 중 최장이었다. 공화당의 강경 자세는 전년의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휩쓴 ‘보수혁명’의 자신감에서였다. 그러나 역풍은 컸다. 국정마비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공화당은 96년 대선은 물론 98년 중간선거에서도 대패했다. 대통령까지 꿈꿨던 깅리치는 하원의장 사퇴와 동시에 정계를 은퇴, 워싱턴에서 사라졌다.
재정적자로 홍역을 앓는 미국에 다시 채무불이행(디폴트) 비상이 걸렸다. 17일까지 국가부채 한도를 늘려야 하는데, 야당인 공화당이 예산안과 부채 증액을 연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16조7,000억달러로 정해진 국가부채 한도는 이미 채워져 이날까지 의회가 증액하지 않으면 미국은 디폴트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미국의 디폴트가 세계 경제에 미칠 파문은 엄청나다. 2011년 국가부채 재조정을 놓고 미국 여야가 입씨름한 것만을 놓고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했을 정도다.
국가부채로 허덕이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가 2009년 200%를 넘어 올해 250%에 육박, 재정구조가 선진국 중 최악이다. 110%대인 미국이 적어 보일 정도다. 프랑스, 영국은 90%가 넘고, 재정이 비교적 탄탄하다는 독일이 80%다. 유로존 전체로는 92.5%다. 선진국의 재정 허약화는 잇단 금융위기로 경기가 침체하자 정부 지출을 공격적으로 늘린 결과다.
한국의 국가부채가 내년에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어선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부채증가 속도다. 환란이 발생한 97년과 비교할 때 GDP는 2.8배로 늘어난 반면 국가부채는 무려 8.5배로 급증했다. 정부는 GDP 대비 부채비율 36.2%를 내세워 건전재정이라고 강변하지만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한 것이라면 비웃음을 살 일이다. 국제통화를 발행하는 미일 양국과 우리는 애초에 처지가 다르다. 적자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언제 신용등급이 낮아져 재정위기를 부를지 알 수 없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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