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내가 ‘her boy friend’라 말한다는 게 ‘his boy friend’라 한 모양이었다. 내 얘기를 듣던 그가 갑자기 내 말을 끊었다. 동성연애를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내가 ‘her’ 라고 했는지 ‘his’라고 했는지 확인해야겠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인물이 이제껏 여자인줄만 알았는데 ‘his boy friend’라고 하니 남자인가 본데 아무래도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국어를 말할 때 우리는 ‘그 여자’나 ‘그 남자’를 거의 쓰지 않는다. 주어를 많이 빠뜨리기도 하고, 성별 구별을 잘 안하여 ‘그 사람’을 더 많이 쓰기도 하고, 그 두 단어가 사람을 얕보는 느낌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어를 꼭 쓰고 성별 구별을 해주는 영어를 말할 때, ‘he’ 를 ‘she’로, 또 ‘she’를 ‘he’라 실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일본인, 중국인, 버마인들도 마찬가지다. 그 미국친구에게 그런 사정을 설명해주니 갑자기 박수를 마구 치면서 ‘Thank you!’ 를 되풀이 했다.
그는 거의 은퇴를 앞둔 종합병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매일 수십 명의 의사들로부터 환자들의 보고를 받는데, 가끔씩 한 환자를 놓고 ‘he’ 와 ‘she’를 바꿔 쓰는 의사들이 있어 자신마저 실수를 저지를 뻔한 경우가 있다고 했다. 지난 몇십년 동안 단지 개인의 순간적 실수라고만 생각하고 그때마다 야단을 쳤었는데 내 얘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그들이 다 동양인이었다 했다. 그는 오늘에야 그 배경을 알았다며 이제는 동양인 의사들의 보고를 들을 때 먼저 자기가 알아서 주의하며 들어야겠다고 했다.
우리 이민자들은 이렇게 습관을 고쳐야 함을 알면서도 계속 실수를 한다. 직업 상 중요하여 노력을 많이 하는데도 쉽게 고쳐지지 않은 것이다. 그 밖에도 중요한 일이 아니라 신경을 덜 써서 습관을 못 고치거나, 제 습관을 몰라서 고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한국어 클래스 학생들에게, 한국학생들과 난감한 문제가 생겨 해결이 곤란하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꼭 나와 같이 해결하자고 강조한다. 그러던 중 남학생 하나가 문제를 들고 왔다. 지난 학기에 한국 남학생을 만났는데 성향과 취미가 많이 비슷하여 급격하게 친해졌다며, 이번 학기엔 거의 매일 하루 종일 같이 지낸다고 했다. 그런데 더 이상은 식사를 같이 할 수가 없을 것 같으니 어쩌면 좋으냐는 것이었다.
그 한국친구는 양 볼이 터지게 입에 음식을 많이 넣고 마구 씹는다고 했다. 입안의 음식이 다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려 씹으면서 말까지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은 그런대로 견뎠지만 더 이상은 그가 밥 먹는 것을 보면 구토증이 나서 그와의 식사시간이 공포스럽다고 했다.
점심 저녁을 거의 같이 먹어야 하는데 자신의 느낌을 얘기해주면 그 친구가 기분 나빠서 자신을 멀리할 것 같아 그러지도 못한다 했다. 식사시간 마다 핑계를 대고 딴 데서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오래 계속되면 자신이 그를 싫어하는 것으로 친구가 오해할 수도 있고, 캠퍼스에서 혼자 밥 먹는 걸 직접 보게 되거나 누구로부터 듣는다면 더더욱 큰 오해를 할 터이니 어쩌면 좋으냐는 것이었다.
한국사람 다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고 크게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 그것은 문화적 습관이라 설명해주었다. 한국친구들은 미국에서 보기 좋지 않은 습관이 있고, 미국친구들은 한국에서 보기 좋지 않은 습관이 있을 터이다, 양쪽은 그것을 알 권리가 있고 알려줄 의무가 있으니 식사시간이 아닌 때를 골라 그 친구에게 객관적 관점에서 찬찬히 얘기해준 후, 그 친구가 견디기 힘든 네 자신의 습관은 무엇인지를 물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이번을 계기로 미국친구들에게 견디기 힘든 내 습관인지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겠다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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