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선생인 아들에겐 따로 지도하는 몇몇 한국 학생이 있다. 어느 날, 자신의 학생 중의 한 아이가 학습 장애가 있다고, 내게 상의를 해 왔다. 많은 한국의 어머니들이 자기 아이의 장애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는 문화임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그 학생의 경우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내게 말을 잘 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도 조금은 아는 엄마여서 껄끄럽기는 하지만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조심스럽게 검사를 권했다. 그 엄마는 내 말을 듣고 너무나 불쾌해하더니 그후로는 나를 안보려 한다. 손자가 애기였을 때다. 어쩌면 자폐아 일지도 모르겠다는 진단이 나왔다. 할머니 눈이라 더 그렇겠지만 생긴 것도 요렇게 예쁘고 똘망똘망 한데다 눈 맞추며 깔깔 웃기도 하는 애보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냐고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매번 다시 거론되고 검사를 거듭하더니 애가 네살이 되었을 때 아스파거라는 진단이 나왔다. 애는 어릴 때부터 심하게 보챘었다.
잘 놀다가도 느닷없이 누가 찌른듯 울기 일쑤이고 반복되는 일상사인데도 조금 다르다 싶으면 성질을 부리며 어쩌다 큰 소리를 듣거나 티브이 속에서 조금 거친 언행을 접하면 파랗게 질려 귀를 막고 무서워서 어쩔줄 모른다. 그렇게 시끌 복잡한 애기가 또 어떤 때는 주위의 상황에 전혀 반응을 하지 않고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질러도 아무 소리 안들리는듯 멀뚱히 있기도 한다. 먹는 것과 자는 것, 누는 것, 옷 갈아입는 것, 일상사의 작은 일과중 힘겹지 않은 게 없었다. 매일 밤마다 이 밤엔 또 어떤 일이 빌미가 되어 전쟁이 시작될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천사처럼 예쁜 아이가 긴 속눈섭을 팔랑이며 미소를 던지면 지나가던 사람도 웃으며 들여다 보았다. 손자가 너무 예뻐 행여나 이번엔 괜찮지 않을까, 저번엔 이래서 그랬는데 이번엔 다르게 하면 되지 않을까. 살살 달래 데리고 나갔는데 무엇이 빌미가 되었건 간에 결국은 몸부림치는 아이를 떼메고 와야하는 상황에 이른다. 애기는 내 힘으론 감당이 안되 번번히 식구들을 전화로 불러내야 했다. 그런 때마다 후회와 좌절감과 죄책감으로 숙연히 고개가 숙여지곤 했다.
진단이 나오고 조부모에게 알려주는 정보와 행동 지침서가 전해졌다. 그 모든 것이 증상중의 하나였다. 성미가 지랄같다고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보는 능력이 없는 장애자가 보이지가 않기 때문에 여기저기 부딪치는 상황에 이르는 것과 같다 한다. 장애 때문에 상황을 이해할수 있는 능력이 없어 자신마저도 좌절하고 황당해서 나온 방법이 그 많은 밤의 보챔과 울음과 떼그쟁이로 나타난 거였다. 그런 아이들은 사회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능력, 단체 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틀의 경계선, 사회적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이 적거나 없다고 한다.
사회적 문제뿐 아니라 신체적 감각에도 문제가 있어 아픔에 대한 반응 도 다르단다. 보통 아이들은 뭔가에 꽝 부딪쳐 아프면 까무라치게 울고 어른들에게 달려와 안기는데 우리 손자는 엄청 아플 것 같게 부딪쳤는데 정작 본인은 멀뚱한 눈으로 어리 둥절해 하면서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 처럼 도망치듯 달려가 구석에 가서 숨고 아픈 부위를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제발 이리 오라고, 품에 안겨 아프다고 징징대며 울라고, 사뭇 애걸해도 영 무가내다. 그 모든 것이 바로 그 장애라는 도둑의 짓이었다. 장애는 아이와 주위 사람들의 소중한 인생의 한부분을 뺏아가는 도둑인 것만 같다. 사태를 이해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애처로움이었다. 내 힘 자라는데까지 힘껏 힘이 되주고 싶었다. 손자는 다행히 특수학교와 치료를 통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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