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문을 읽다가 우연히 자녀 교육 세미나에서 강사님이 하신 말씀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유독 내 가슴을 찔렀다. 그 분은 자녀를 네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는데 첫째 유형은 미국 문화와 한국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자녀, 두번째 유형은 미국문화에는 익숙하지만 한국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 세번째 유형은 미국문화를 못받아들이고 한국문화에만 익숙하여 힘들어 하는 아이, 네번째 유형은 미국문화, 한국문화 모두를 낯설어 하며 어디에서도 마음을 못 붙이는 아이로 나누며 설명하셨다. 이 칼럼을 읽으며 유독 내 마음을 힘들게 했던 둘째 아이가 떠올랐다. 우리가 미국땅을 밟을 때, 둘째는 다섯살이었고 유치원부터 여기에서 다녔으니 모든 교육을 여기서 받은 셈이다. 네가지 분류에서 두번째, 미국문화에 친숙하고 한국문화는 힘들어하는 아이라는 객관적인 분석이 내 마음을 힘들게 했다. 내 욕심은 첫째 유형의 아이로 키우고 싶었던 것 같다. 부모와도 생각을 공유할 수 있고 미국 사회에서도 적응을 잘 하며 성공하는 자녀를 목표로 미국생활을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둘째와 부딪히며 의견이 맞지 않아 마음고생하던 둘째의 사춘기 시절, 내가 힘들었던 점은 이런 성향의 둘째가 내 마음과 맞지 않은 행동을 한다고 생각을 할 때였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국문화와 한국문화가 공존하는 가정에서 정체성의 혼란으로 고민스러워 한다는 사실과 이론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자녀 교육에서 현실의 문제로 부딪히면 모든 이론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감정이 정신을 지배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며칠 전에도 부모와 한 마음이 되지 않는 둘째를 보며 서운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고 이기적인 아이라고 원망하기도 했다. 자녀의 문화가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아이의 입장에서도 똑같이 부모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둘째 아이는 미국문화에 익숙하고 한국문화에 서먹한 경우일 뿐, 문제는 내가 아이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을 이제야 새삼 깨달으니 딸에게 가졌던 원망의 생각들이 도리어 화살이 되어 내 가슴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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