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입동(立冬)이다. 늦가을 비가 서둘러 지나더니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단풍의 빛바랜 낙엽들이 몸 둘 곳을 찾아 갈 길을 재촉한다. 아마도 솟아나왔던 땅의 품으로 되돌아가 내년 봄을 기다리려 하는 것 같다. 조용히 운행되는 천지와 자연의 변화와 이치를 새삼 느껴 본다. 우리 인간들에겐, 무더웠던 단련과 성숙의 여름을 지나, 결실과 수확의 가을을 거쳐, 이제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한 갈무리에 분주한 시절이다. 요즈음은 신속한 물류와 효율적인 저장고가 많고, 시간과 공간 경계를 편리하게 넘나들며 재래식 농사외에 다른 일들로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옛 전통과 풍습에 익숙한 이들은 김장을 담구며 오붓한 겨울을 맞으려 한다. 올해엔 배추와 무 등 김장채소가 풍작이라고 하니, 소비자들은 값이 내려 좋아하겠지만 농부들은 시름이 클 것 같다.
오늘은 한국에서 대학에 입학을 위한 수학능력시험을 치는 날로, 수험생들의 교통편의와 효과적인 시험분위기 조성을 위해 온 나라가 예민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이는 캘리포니아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으로서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내심의 긴장과 격려 속에, 그들의 미래를 예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한창 커가는 대부분의 고등학교 학생들은, 마음껏 놀아볼 겨를도 없이,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시험 준비에 심신을 다 바쳐 노력하여 왔다. 그들을 뒷받침하는 학부모들은 항상 보살피느라 고생하였는데, 모두 애쓴 보람이 크기를 바란다. 몇 년 뒤부터는 고등학교 졸업생 수가 대학의 입학정원보다 적어지게 되어 입학경쟁은 줄어들게 되는 반면,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적지 않은 수의 대학들이 존립의 위기를 맞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튼, 매년 통과의례처럼 겪는 사회적인 진통을 음미하며, 모두 더욱 성숙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연구와 준비를 해야 될 때이다.
전통적인 산중의 절에서는 입동을 맞으며 김장을 하는 등, 겨울 안거(安居)를 준비한다. 안거란 결제(結制)라고도 하며, 선원을 중심으로 음력 시월 보름에 시작하여 이듬해 정월 보름에 마감하는 겨울수행살림이다. 수행자들이 삼개월동안 절의 산문 출입을 하지 않고 수행정진에 집중함을 가리킨다. 이는 동북아시아 불교계가 지켜온 미풍양속의 하나이다. 아열대 기후의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는 음력 사월 보름부터 칠월 보름까지 여름 안거 전통을 지켜 온다. 추운 겨울을 겪는 중국과 한국에서는 수도자들이 여름안거와 더불어 겨울안거를 한다. 한 해를 네 쪽으로 나누어 봄과 가을에는 자유로운 시간을 갖고 만행과 새로운 수행도량을 찾아 움직이는 기회로 삼는다. 아무튼, 독자들도 각자의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나름대로 살림살이를 잘 가다듬고, 알차게 겨울을 보내실 준비를 하여, 내년의 활기찬 입춘을 기약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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