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실에서 시집 한 권을 빌렸다. 그냥 우연히 정호승님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 눈에 띄었다.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내가 가끔씩 외로운 것은 ‘내가 사람이니까 어쩜 당연한 거야’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한번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온 지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가끔은 친구가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마음을 터놓고 힘든 얘기도 하고, 애들 키우는 얘기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타국에서의 생활은 호사스러운 친구타령을 허용하지 않았다.
봉사활동이니 방과후 활동이니 하며 운전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고, 또한 낯선 문화 속에서 아이들 양육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경험해보지 않은 교육환경이었기에 하나하나 배워가느라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어디 그뿐이랴.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타국에서의 불안한 나날들이 나를 휩싸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게 되었고 우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곳으로 짐을 싸서 이사를 가야만 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주권도 쉽지가 않았다. 2001년 9.11. 사태가 일어나자 모든 영주권 수속은 멈춰버리다시피 했고 10년을 미국에서 산 아들은 외국인 자격으로 대학에 가야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었다.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미국생활은 가끔씩 나를 외롭게 했다. 그런데 이 외로움마저 눈치를 보며 외로워해야 했다. 혹시나 남편이 걱정할까? 아이들이 불안해할까? 염려해서였다.
그런데 이 시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며 당당히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속이 시원했다. 외로움을 느끼는 것마저 미안해 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며 시를 읽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이 시는 ‘수선화에게’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나는 이 시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손에 들고 다니면서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그냥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소리내서 읽는다. 구절구절 마음에 와닿는다. 멋있다. 이 시 덕분에 나는 그동안 스스로 억눌러만 왔던 내 감정이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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