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친할아버지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할아버지’처럼 늘 자상하고 유쾌하며 흥이 넘치는 그런 분이 아니셨다. 근엄한 모습에서 풍겨나오는 카리스마와 ‘너희 할아버지는 대단하신 분이야’라는 설명 속 할아버지는 늘 신비롭고 또 접근하기 힘든 그런 어려운 분이셨다. 분명 할아버지는 가족을 많이 사랑하신 분이었고, 특히 첫째 손녀인 나를 많이 이뻐하셨었다. 일요일 오전 할아버지댁을 방문하면 늘 반가워 하시며 나를 안아주셨지만, 바로 다시 소파에 돌아가 뉴스를 시청하셨다. 할아버지는 말수가 적으셨다. 우리와 대화를 하지 않으셨다.
그런 무서운 할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나를 데리고 산책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다. 이미 몸이 많이 쇠약해지셔서 삼촌과 아버지가 옆에서 부축하지 않는 이상 오래 걷기 힘드신 분이 7살밖에 안된 손녀를 데리고 어떤 은행나무를 보러 가야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한손엔 지팡이, 다른 한손엔 내 손을 쥐고 할아버지는 ‘어떤 은행나무’를 보러 길을 나셔셨다. 당시 7살이었던 나에게 그날의 기억을 간추려 말하자면 할아버지와 나는 언덕이 가파른 길을 한참 올라 매우 큰 은행나무 앞에 도착하였고, 할아버지는 그 나무에 대한 설명을 하셨으며, 돌아오는 길에 그만 넘어지셔서 바지가 찢어지고 무릎을 다치셨다. 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무릎을 치료하실 동안 소파에 앉아 무언가에 대해 들떠 얘기하셨다. 나는 문뒤에 숨어 그 모습을 보며 여러가지 감정에 휩싸였었다.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를 부축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할아버지 무릎에 흐르는 피에 대한 공포감은 어린 나에겐 잊지 못할, 그렇지만 잊고 싶은 날로 기억돼 있다.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그날을 생각하면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할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나를 생각하며 마음이 애잔해진다. 표현이 서툴고 늘 고독하셨던 분. 그런 분을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고, 다시 그 은행나무를 찾아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싶어졌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떠나신 후였다. 은행잎이 온 거리를 노랗게 물들이는 가을이 되면, 500년의 은행나무와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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