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과목을 듣는 한 미국학생이 아주 중요한 질문이 있다며 이메일을 보내왔다. 인터넷에서 한국에 관한 글들을 읽다보니, 한국 사람들은 외모와 몸무게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글들이 많더라고 했다. 성형수술도 많이 하고, 마른 사람들조차 다이어트를 열심히 한다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조만간 한국에 가서 영어교사 등의 일을 하면서 얼마간 살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이 여학생은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고 얼굴도 상당히 예쁜 편이다.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마른 축에 끼지 못할 텐데, 마른 몸매에 집착하는 한국사람들 속에 섞여 사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겁이 난다며, 한국에서 사는 일을 포기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질문이었다. 한국에서 살거나 살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으며 안타까웠다. 어려운 과목들 중 하나로 꼽히는 한국어 클래스에서 1, 2등의 성적을 내며, 평소에 생각이 깊고 성숙한 예쁜 여학생이 그런 고민 때문에 한국 가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친구의 딸이 어느 한국인 단체를 위해 통역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 사업차 미국에서 1개월 간 머물게 된 단체였다. 그녀는 갑상선기능 저하증으로 체중이 많이 늘어 한참 고생하다가 끈질긴 식이요법 등으로 간신히 몸무게를 정상으로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였다. 그런데, 그 단체의 중년 한국인들이 기회만 있으면 그녀에게 살쪘다고 놀리며 수시로 살을 빼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갑상선의 병력을 얘기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놀려대서 상당히 화가 났다고 했다.
처음엔 그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우선은 그녀가 조금도 뚱뚱한 편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말라야 보는 사람들이 만족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년이나 된 어른들이 젊은 아가씨의 몸무게를 놓고 그렇게 끊임없이 놀릴 수 있는 걸까? 자신의 질병까지 들춰내어 몸 상태를 설명해주었다는데도.
25년 전 우리 부부가 신혼여행 차 처음 한국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그다지 살찐 편이 아니었는데, 둘이 연애를 하면서 끼니때 마다 만나 같이 식사를 하다보니 조금씩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에 갔을 땐 30여 파운드가 늘어나 있었다. 친정 부모님은 처음 봤을 때보다 살이 오른 사위를 보고 놀라서, 한국에 머무는 동안 그의 몸무게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셨다. 놀렸던 것은 아니고 그저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친해도 남의 늘어난 몸무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입을 다무는 미국에서 자란 남편은 장인 장모의 몸무게에 대한 언급이 너무도 버거웠다. 그렇지 않아도 살찐 것이 속상해서 거울도 잘 안 보는데, 틈만 나면 또다시 놀란 얼굴로 살찐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장인 장모가 참으로 야속했다. 내가 그만 좀 하시라 말씀 드렸어도, 짧은 시간에 살이 많이 쪘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운 어른들은 계속 그의 몸무게를 언급하셨다.
그때만 해도 한국인들은 체중증가에 전혀 민감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다이어트 프로그램 선전하는 것을 보면서, 결코 한국에는 발 들일 수 없을 것이라며 웃었던 생각이 난다. 그랬건만, 요즘 한국에서는 인터넷, 텔레비전, 거리 등에 나오는 광고의 대다수가 살빼기와 관련이 있다. 운동, 식이요법, 약 등 다양한 매개체를 이용한 살빼기 선전이 수도 없이 많고, 많이들 눈여겨보는 것 같다. 특히 여성들의 대화내용은 물론 생활비용도 먹는 품목보다 살빼는 품목의 비중이 훨씬 크다.
그만큼 몸무게 증감에 예민해졌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남의 살찐 것을 쉽게 대화에 올리며 농하는 건 여전한가 보다. 앞의 여학생에게 급한 대로, 외국인은 몸무게 평가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 얘기해주었다. 그러고 나니 문득 남편의 경우가 생각나서 은근히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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