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들추면, 한국신문이나 미국신문이나 빠지지 않는 기사가 폭력 사건이다. 어쩌면 그토록 폭력이 현대사회의 단골 메뉴가 되었는지 개탄스럽다. 최근 맨하탄 다운타운에서 두 살 난 딸을 보호하려고 폭주족과 맞섰던 알렉시언 리언 씨(33세)가 몰매를 맞아 죽기 직전에 이르렀다.
젊은이들이 데이트하기도 겁난다. 뉴저지 파세익 카운티는 폭력 대책본부를 구성하고 학교를 방문하여 계몽강연을 하고 있다. 여학생 6명중 1명이 데이트 중 폭력을 당하였고, 전체 10대의 57%가 육체적, 성적, 혹은 언어상의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고백하였다. 도대체 폭력은 이 사회에서 뿌리를 뽑을 수 없단 말인가?또 여섯 살 박이가 다섯 살 난 아이에게 총을 쏘아 중상을 입히는 사건도 일어났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폭력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집집마다 총기를 가지고 있는 미국사회를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고대 유럽은 정복자들에 의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학설이었다. 그러나 최근 언어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정복자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더 잘 살기를 바라며 좋은 땅을 찾아간 농업 이민에 의하여 고대 서양문명이 싹트고 유럽인이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 발전이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농민들의 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오늘의 세계에도 깊은 교훈을 준다. 억세고 강한 자가 이기는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는 부드럽고 평화로운 자가 승리한다. 양육강식은 진리가 아니다. 강한 짐승들은 쇠퇴하고 약한 동물들은 잘 번식한다.
미국의 토마스 에름돌프 의원은 하원 커뮤니케이션 분과에서 이런 보고를 하였다. “미국 아이들은 TV를 통하여 18세까지 1만8,000건의 살인을 감상한다. 강도 방화 총질 구타 고문 등 폭력에 속한 장면을 매분 한 건씩 TV에서 본다. 드라마의 75%는 폭력을 포함한 줄거리이다.”
폭력도 결국 무엇인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방법이겠지만 간디의 말대로 폭력으로는 절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바웬사는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말했다. “인류의 문제들이 반대자를 제거하고 남의 머리를 잘라냄으로 해결되리라는 잘못된 기준을 버려야 한다. 폭력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폭력을 쓰지 않는 것만이 현대의 혼란한 정치와 도덕에 대한 해결책이다. 압제와 폭력을 극복하기 위하여 또 다른 종류의 폭력을 써서는 안 된다. 비폭력은 아프고 괴로운 과정이지만 거기에만 속량(贖良, Redeem)의 힘이 있다.”
폭력은 주먹 칼 총 뿐이 아니다. 눈 흘김 한 번이 증오의 씨가 될 수 있고,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과격한 언사, 남의 속을 긁는 말, 모욕적 행동, 부정적 비평 등이 모두 폭력이다. 예수가 자기의 생애를 통하여 증명해 보인 것은 사랑이 폭력을 이긴다는 것이었다. 현실 생활에서 믿기 어렵겠지만 그것은 진리이다. 폭력을 방편으로 살던 자들의 말로가 비참한 것은 역사가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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