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4년 1월 1일(금)
또 새해가 되었구나. 내가 어느새 90이 다 되다니… 그리고 이젠 병원침대에서 일어날 수 조차 없게 되다니… 2년 전쯤부터 갑자기 노쇠해져서 움직임이 많이 힘들게 되었지만 지팡이의 도움으로 조금씩 걸을 수 있었는데, 두 달 전 정신을 놓고 쓰러진 후 지금까지 병실에 누워 있다. 말하는 것조차 어렵지만, 눈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컴퓨터의 도움을 빌어 일기라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 덕에 남편, 아들과 대화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2044년 1월 3일(일)
아들이 다니러 왔다. 얼굴이 더더욱 초췌해 보이는 것은 두 달간 내 병문안 다니느라 힘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너도 벌써 60이 다 되었구나. 네 일만도 힘들텐 데, 내가 너를 너무 고생시키는구나. 내가 빨리 가야 네가 편할텐 데, 나는 노쇠할 뿐 큰 이상이 없다니 곧 떠날 것 같지 않아 무섭다. 미안하구나.
2044년 1월 5일(수)
급기야 남편도 쓰러졌다. 병원이 우리 노인아파트에서 멀지 않아 매일 들르더니 그게 힘들었던가? 어제 오후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들어간 당신을, 나는 오늘에야 아들의 부축을 받아 잠깐 볼 수 있었구려. 산소 호흡기를 단 채 꼼짝 않고 누워 있는 당신. 여보, 우리가 그렇게도 걱정하던 일이 생겼구려. 우리 중 누구 하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함께 일을 저질러 버리자고 수십 년 철석같이 약속을 했었건만, 지난 두 달 동안 차마 일을 저지르지 못하더니 당신도 결국 그렇게 되었구려. 당신만이라도 고생 마시고 서둘러 가시구려. 그리고 어디를 가든 도착하는 대로 빨리 나도 당신 곁에 불러주어요.
2044년 1월 7일(금)
입원 후 고가구 속에 넣어 둔 일기책 몇 권만 가져다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었는데, 남편 대신 아들이 오늘에야 가지고 왔다. 아버지의 일을 한시라도 잊게 해주려는 효심이 무척 고마웠다. 아들을 보낸 후 간호사의 도움으로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한 장, 한 장 읽으며 지난 시간들을 더듬었다.
*2014년 1월 1일(수)
한국에서 맞은 새해. 어느새 60을 바라보게 되다니… 구정이 더 큰 새해의 의미를 지녀서인지 이곳은 미국에서만큼 새해의 느낌이 덜하다. 88세와 85세의 연세에 비해 많이 건강하신 친정 부모님이 너무도 감사하다. 부디 그렇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나, 남편 그리고 아들도 건강한 현재의 이 행운을 잘 지켜내도록 금년 내내 열심히 노력하기를 약속한다.
*2014년 1월 11일(토)
2주의 방문이 끝나 내일이면 미국으로 돌아간다. 이번 여행엔 주로 부모님과 함께 있어서 기쁘다. 두 분을 두고 떠나는 마음이 언제나 그렇듯 안쓰럽다. 딸과 함께 야외로 나가 점심 데이트를 자주 할 수 있어서 마음 풋풋했던 어머니, 처음으로 ‘사랑한다’ 말씀하시고 영화데이트까지 신청하셨던 아버지. 다음에 뵐 때까지 제발 건강하세요.
*2014년 1월 12일(일)
비행기에서 나오니 2주 만에 만난 남편이 언제나처럼 장미 다발을 들고 저 앞에서 환히 웃고 있었다. 남편의 포옹을 받고 활짝 웃다 보니, 부모님 곁을 떠나며 질질 울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다.
2044년 1월 11일(월)
30년 전 일기장들을 읽었다. 아, 내게도 그런 날들이 있었지! 몸이 힘들어지고 정신도 조금씩 사그라져 가다보니 그 아름다웠던 젊은 날들의 기억을 오래 잊고 살았다.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맛보고 싶은 욕망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단 일 주일이라도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