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스프츠 중계방송 시청을 즐기지만, 나는 스포츠 중계방송을 잘 보지 않는다. 내가 보는 중계방송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 같은 큰 경기를 제외하고는 내가 직접 즐기는 스포츠에 국한된다.
그런데, 내가 즐기는 테니스경기를 보다보면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경기 전에 외국의 유명 선수들과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인터뷰 말미에 모든 선수들이 거의 예외 없이 하는 말이 있다. “…I’m gonna have some fun!” 이게 무슨 말인가? 동네 클럽대항 자장면 내기시합도 아니고, 100만달러 이상의 상금이 걸려있는 윔블던이나 US 오픈 같은 그랜드슬램대회 결승전 시합 전에도 예외 없이 하는 말이 “즐기겠다”라니…전설적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도 그랬다. 인터뷰를 할 때면 ‘이번 시합에서는 기필코 이기겠다’는 비장함이 없고, 한 마디 건너서 농담을 던지고, 너스레를 떨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곤 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그 유명한 “나비같이 날아서 벌같이 쏘겠다”는 재담도 나왔다.
북미에서는 축구가 미식축구나 농구, 야구 등 다른 스포츠에 밀려 별 인기가 없는 편이지만, 의외로 초중등학생 여자축구는 굉장히 활성화 되어 있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동네마다 커뮤니티 내 팀별 시합들이 매주말 벌어지는데, 이때도 따라온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시합 직전에 하는 마지막 말은 거의 예외 없이 “Have fun!”이다. 나는 내 딸아이가 시합을 갈 때 거의 무의식중에 습관적으로 “잘 해!” “이기고 와!” 했었던 것 같다. 시합이 끝난 후에도 첫 마디가 “이겼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참 열심히 악착같이 한다. 특히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 같은 큰 시합에 나가는 선수나 코치들의 인터뷰를 듣고 있노라면 거의 예외없이 “기필코 이기고 돌아오겠다” “지면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하면서, 무슨 전투에 나가는 장군과 같은 비장함을 보이곤 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당시 촉망받던 권투선수였던 김득구 선수는 레이 맨시니와의 라이트급 타이틀전을 위해 미국으로 떠날 때,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장수 방덕이 관우와 싸우러 나갈 때 했던 것처럼 미국행 비행기에 작은 나무관을 싣고 갔다. 물론 상징적인 것이었겠지만, 이처럼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비장함을 보이며 떠났던 그는 실제로 경기 도중에 쓰러져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어 전 세계 권투 팬들을 안타깝게 했었다.
비단 스포츠경기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무얼 해도 억척스레 목숨을 걸고 하는 경향이 있다. 술을 마셔도 경쟁하듯 끝장을 봐야 하고, 심지어 오락을 할 때도 이를 악물고 놀아야 직성이 풀린다. 가수, 연극배우, 영화 배우 같은 예능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공연 전 인터뷰에서 거의 예외 없이 “죽을힘을 다해…” “무대에서 쓰러질 각오로…” 라고 말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는 손가락 부상으로 5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후 컴백공연을 가지면서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엔 무언가 완벽하게 쫒아가지 못 할까봐 노심초사했는데, 오히려 집착을 버리고 채찍질을 멈추니까 그 소리가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나옵니다”라고. 저 세계적인 거장도 나이가 예순 중반에 들어서야 이 걸 깨달은 것이다.
논어 옹야편에도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 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했듯이 우리가 무얼 하든지 최고의 경지는 ‘즐기는 경지’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진수성찬이 차려진 식탁에서 오직 허기만을 채우기 위해서 허겁지겁 식사를 한다면, 돼지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식탁에 마주앉은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하면서, 천천히 갖가지 차려진 음식들의 맛을 하나하나 음미하는 자세가 지혜로운 식사법이라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일을 하든 너무 악착떨지 말고 즐기는 마음을 갖자. 그래서 새해 결심으로 이런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I’m gonna have some fun this year!”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