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를 취급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연초에 시작한 겨울학기와 2월 중순에 시작하는 봄 학기 교재를 준비하느라 지난 12월부터 지금까지 일에 치여서 살고 있다. 전에는 교재를 파는 일만 했는데, 이번 시즌부터 요즘 추세에 맞춰서 교과서를 대여하는 일을 새롭게 시작해서 유난히 더 바쁘다. 컴퓨터로 처리하는 시스템을 배워가면서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위해 남편은 먼 곳까지 출장 가서 교육도 받고 왔다. 시스템을 작동하다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각 과목별로 적정량의 교재를 주문하는 일 등으로 남편은 집에 와서도 밤늦게 까지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매일 입고되는 새 교과서를 정리하고 중고 교과서는 일회용 항균 물휴지로 닦고 찢어진 곳은 테이프나 풀로 붙이는 것이다. 그런 다음 중고서적 구분용 POS 바코드를 만들어 매 책마다 붙인다. 일이 고되지만 복잡한 일들이 하나씩 정리되는 것도 재미있고 새로운 시스템을 배우는 것도 즐겁다.
아침에 일터로 나가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곤 한다. 힘든 일들도 봄 학기 교과서 판매가 끝나는 3월 말이면 일단락된다. 그리고 나면 여름학기 준비가 시작되는 5월 초까지 일 개월 간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일이 많으면 일을 해내는 데 따른 성취감도 높다. 하지만 일을 잘 마무리해야한다는 스트레스와 몸의 피로로 조그만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때가 있다. 지난 주일날이 그랬다.
지난 주일은 우리구역 점심식사 당번 날이었다. 3부 예배 후 점식식사를 함께 하는 교인 수가 300명이 넘으니 준비가 만만치 않다. 실수를 하면 안 되기에 바짝 긴장하여 일을 하던 중이었다. 봉사담당인 여자 집사 한 분이 2부 예배를 마치고 아침식사 서빙을 위해 부엌으로 왔다. 하이힐 대신 납작한 구두로 갈아 신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단정한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발을 내려다보았다. 부엌일을 하다 보면 물이 튈 것 같아 스타킹을 벗고 맨발에 교회에 비치된 고무슬리퍼를 신고 있는 발이 좀 부끄러웠다.
무 오뎅 국 간도 알맞고 밥도 잘 지어졌고 김치도 다 용기에 담고 나니 할일이 끝났다. 예배 시간까지 40분간의 여유가 있었다. 화장실에 가서 스타킹을 다시 신고 하이힐로 갈아 신은 후 도서실에서 느긋하게 커피한잔 해야지 하고는 가방을 들고 부엌을 나섰다.
그런데 마침 그 ‘멋쟁이’ 여자 집사와 복도에서 마주 쳤다. 그는 나에게 “예배에 들어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순간 나는 그 질문이 그 모습으로 예배에 들어가는 거냐고 묻는 것만 같았다. 당황하며 “아니. 왜?”라고 되물으니 “혹시라도 깜박 잊고 슬리퍼 신고 예배당에 들어가는가 싶어 서요” 하는 것이었다.
그는 분명 좋은 의도로 한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마치 내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으로 비쳐진 것 같은 열등감에 사로 잡혀 한동안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그리고는 기분이 상했다는 말을 결국은 그에게 대놓고 하고야 말았다. 상대방이 당황했음은 물론이다.
전에는 누가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았고 누구의 평판이나 비판이나 모함까지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내가 규정하는 나의 모습 그 자체가 중요했다.
몸이 너무 피곤하면 마음도 약해지는지 지독한 콤플렉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아마도 심신의 스트레스가 엉뚱한 방향으로 터져 나온 것 같다. 그에게 미안하다고 뒤늦게 사과는 했지만 서먹해진 마음이 회복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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