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개학 첫날 저녁, 위스콘신에 사시는 시아버님의 전화를 받았다. 응급실에 계시다는 첫 마디에 시어머님이 또 응급실에 가신 줄 알았는데, 시동생의 죽음을 알리시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학교에서 막 나와 운전 중인 남편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식을 들은 남편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시어머님이 시동생을 출산 후 집에 데리고 와서 두 살짜리 형에게 “네 아기”라고 소개해주니 제 소유물을 몽땅 아기 침대에 던져 넣어줄 정도로 남편은 동생을 사랑했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동생 잃은 마음과 아들 잃은 아픔이 같으랴? 약하디 약하신 어머님은 며칠 동안 먹지고 자지도 못해서 더욱 바짝 말라 있으셨다. 그래도 우리 식구가 도착하자 조금씩 기운을 차리면서 잡숫기 시작하셨다.
우리 부부는 언젠가 직장을 옮길 생각을 하며 살았지만 시동생은 위스콘신에서 평생 살겠다고 작정했었다. 그래서 시부모님은 5년 전 그의 집 근처로 이사를 하셨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여름방학과 크리스마스가 되면 열 두어 시간 운전하고 올라가 그의 집에 머물렀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그의 집에서 닷새쯤 머물렀었다. 일년에 몇 번밖에 보지 못하던 그와 불과 한달여 전에 그나마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음이 너무도 감사했다.
그는 작년 4월 대형 차사고로 중환자실에만 3주 있었다. 눈 온 새벽길에 차가 미끄러졌던 것이다. 생명엔 지장이 없다고 했지만 우린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올라갔었다. 엉치, 어깨, 팔, 팔목 등 부러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다 머리까지 다쳐서 의식을 잃고 있었다. 3주가 지나 의식을 찾은 후 일반병실로 옮겨졌고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야 집에서 통원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대형 사고였다.
역사학 교수였던 그는 사고 후 강의를 쉬고 있었다. 늦가을쯤부터 완전히 회복되고 이번 학기부터 다시 강단에 설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워했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때부터 갑자기 엉치뼈와 목에 통증이 생겨서 다시 정형외과, 내과, 신경외과 등의 의사들을 만나면서 온갖 종류의 약을 먹어야 한다며 불평했었다.
운명을 달리 했던 그날, 그는 구토증이 심하게 와서 스스로 응급실에 운전해 갔다고 한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계속 구토를 하다가 정신을 잃으면서 심장박동이 점점 약해졌고, 웬일인지 20분 동안 혼자 병실에 남겨졌는데 그 동안 운명했다고 한다.
사망원인이 확실치 않아 부검을 했고 아직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의료조사단은 약물이 원인인 것이 거의 확실하며, 위독한 상태에서 20분 동안 혼자 방치되어졌다는 사실은 그냥 묵과할 일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새벽부터 눈이 펑펑 왔던 아침 장례식에 수많은 동료와 학생들이 참석했다. 원통한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형의 조사가 끝난 후 10여명의 사람들이 그가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눈물과 웃음 속에 말해주었다. 다정다감한 줄은 알았지만 내성적이어서 가깝게 지내는 몇 사람들하고만 친하게 지낸 줄 알았는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교수로서도 학생들을 자상하고 정성스럽게 지도했었나보다.
조사들을 들으면서 다음에 다시 그를 만나면 더 친근감이 갈 것 같았고, 그의 다른 면을 알게 되어 참 기뻤다는 얘기도 해줘야겠다 생각할 정도로 그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다. 지난 주부터 일을 하다가 혹은 운전을 하다가 깜짝깜짝 놀라며 실감나기 시작했다. 그가 이 세상에 없다니? 그럼 그는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많은 친지들이 남편과 내게 꽃과 카드를 보내주었다. 남편은 집안에 있는 두 형제의 사진을 모두 뒤집어 놓았다. 차마 볼 수가 없단다. 그래도 동생의 빈자리가 친구들의 마음 씀으로 조금씩 채워지는 것도 같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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