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이 얼만데? 그러지 말고 반반씩 나눠 가지자. 나 하고 싶은 거 하게… 아무 대꾸없이 힐끗 쳐다보는 남편, 섭섭한 모양이다. 뭐하지? 어디 가고 싶은데는? 아무리 맞춰봐도 서로의 일정이 만만치 않아 곧 첫 물음으로 되돌아온다. 하와이는 어때? 원래 결혼기념일에는 신혼여행 갔던 곳에 다녀온다던데… 시간이 안되나? 옆에 있는 딸도 한마디 거든다. 25주년 결혼기념일에는 은으로 된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내 취향은 아닌 듯하다. 둘만의 특별한 날, 꼭 집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좋겠지만, 왠지 이날만큼은 함께 살아온 25년을 돌아보며 더 조용히 지내고 싶어진다.
우리가 함께 걸어온 그 길은 꽃밭이었을까? 우리가 과연 함께 주욱 같은 곳을 바라봤을까? 하며 지나온 세월을 되짚어보면서 말이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난 남편에게 위로금을 달라고 말했다. 여러 면에서 부족한 당신하고 살아줬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냐는 말도 덧붙이 면서… 허탈한 웃음과 함께, 천상 여자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속았다면서 위로금을 받아야 하는 쪽은 오히려 자기라고 우겨댄다.
긴 세월이긴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 우리의 시간 속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설레었던 사랑이라는 물건을 흘려 버린 것 같다. 어디쯤이었는지 가늠도 할 수 없는 곳에서 말이다. 하지만 난 안다. 함께한 세월 동안 내공이 쌓이고 연륜이 더해질수록 사랑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살아본 쉰살이 실수투성이었고, 살아본 적이 없는 쉰한살도 비슷한 모습이겠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되는 걸 보면, 아마도 서로의 못난 모습에 견주어 위로를 받기보다는 별탈없이 함께한 시간만큼은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옆에 누워있던 건장한 청년은 어느새 흰머리가 무성한 중년이 되어있다. 남편의 눈에 비춰진 내 모습도 같은 모습이겠지… 오래된 편지지를 꺼내 그동안의 고마운 마음을 하나하나 적어본다. 내일 모레로 다가온 25주년 결혼기념일엔 가까운 산장에라도 가서 둘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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