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1865∼1945)의 애국가 가사 친필본을 보관하고 있는 미국 애틀랜타의 에머리 대학이 이 가사지를 한국에 반환할 뜻을 밝혔다.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는 에머리대학이 윤치호의 애국가 친필본을 유족·한국정부와 협의, 한국으로 반환할 용의가 있다고 답한 서면을 확보했다.
혜문 스님은 "지난 1월31일 내가 에머리대학을 방문, 애국가 친필본 원본을 열람할 때 대학 측은 구두로 ‘1945년 윤치호가 딸에게 직접 써준 친필본이며, 1990년대 유족들에 의해 윤치호의 모교인 에모리대학에 기증됐다. 윤치호가 애국가 작사가로 한국에서 인정된다면, 그리고 유족의 반환 요청이 있다면 다시 한국으로 반환하겠다’고 이미 말했었다"고 전했다.
"이번 서면은 반환용의에 대한 재확인 절차를 진행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유족 역시 ‘윤치호를 작사가로 인정한다면 애국가 친필본의 반환에 동의한다’는 서면 약속을 받았다고 말했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는 ‘윤치호 애국가 단독 작사설’을 심의했다. 그러나 ‘찬성 11 대 반대 2’, 만장일치가 아니라는 이유로 결정을 유보했다.
다만, 애국가 작사가를 조사하면서 ‘1907년 윤치호 작’이라고 쓴 이 가사지가 위조가 아니라면 애국가 작사자를 윤치호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기재했다.
혜문 스님은 앞서 이 친필본을 열람하고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애국가 작사 심의 당시 증거로 제출됐던 문서와 동일한 것으로, 윤치호가 1945년 직접 작성한 친필본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1907년이건, 1945년이건 작성 시점이 중요하다기보다 자신이 작사가라고 밝힌 문서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혜문 스님은 "에머리대학이 윤치호 친필본 애국가 반환의사를 피력한만큼, 친필본의 진위에 대한 논의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윤치호의 친필본이 진짜라면 애국가 작사가로 추정되는 사람이 남긴 유일한 문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사편찬위원회에는 윤치호의 친필본 애국가가 사진유리원판으로 남아 있다. ‘윤치호의 자필 원고’라고 명기된 자료다.
혜문 스님은 "남아 있는 윤치호 필적들을 수집, 대조 작업 중"이라면서 "관련 전문가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데 육안으로 보기에는 거의 친필본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달 초 귀국하는대로 윤치호 친필본의 진위를 확정하는 추가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