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 32년 동안 미국에 살며…보며…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공존하는 이 나라에서는 어릴 적부터 타인의 문화를 포용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편견이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것은 편견이 심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아래의 시는 러시아계 미국인인 찰스 레즈니코프(Charles Reznikoff 1894 – 1976)가 썼던 ‘살며... 보며…’라는 제목의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버스 타고 가는데 말이에요, 내 근처에 남자 둘이 앉아 있었어요. 옷을 아주 잘 입었고, 영양 상태도 좋아 보였고요. 아마 40대쯤 됐을까요? 보나마나 자기 동네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을 거에요. 그 두 사람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좋은 집안에서 잘 자라고 교육받은 사람들답게요. 그리스어였는지 이태리어였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모르는 그런 언어였지요. 그런데 갑자기 그들 뒤에 앉아 있던 아줌마가 소리를 빽 질렀어요. 정말 크게요, 빼애액! ‘영어로 말해요! 미국에 살지 않아요? 여기서 밥벌이하지요? 그럼 미국말을 해야지요!’
두 남자 중 한 사람이 아줌마를 쓰윽 돌아다보더군요. 그리고는 다시 두 남자는 그리스어인지 이태리어인지 모를 언어로 조용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계속했어요. 잊을 만하면 한번씩 아줌마는 소리치곤 했어요, ‘영어로 말하란 말이에요!’
만약 그들이 유태인이라면, 참 불편하겠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지요. 그리고 그들의 얼굴빛이 바뀔 것이고 - 둘 중의 한 사람이 아줌마에게(만약 영어를 할 줄 안다면 말이에요) ‘미국은 자유의 나라 아니에요?’ 라고 항의라도 할 법했겠지요.
그러면 시끌벅적하게 싸움이 벌어졌을는지도 몰라요. 아니면 불편한 침묵이 계속되거나 말이지요. 그렇지만 이 두 남자는 계속 자기들이 하던 대로 대화를 계속해 나갔어요. 아줌마를 다시 돌아보거나 아줌마가 떠드는 것을 들었다는 표시를 내지 않고 말이지요. 드디어, 이 아줌마! 벌떡 일어나더니, 내 옆에 와서 앉는 거에요. 그리고 하는 말, ‘저 두 남자 어떻게 생각해요? 왜 영어를 안 하는 거에요? 미국에 살면 영어를 해야지, 그래요, 안 그래요? 우리나라에서 밥 벌어먹고 살잖아요?’
나는 아줌마에게 ‘참을성을 가지세요. 영어가 그렇게 쉽게 배워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저들이 안 배우면, 저들의 자녀들이 배울 거에요. 우리 미국의 학교들은 아주 좋으니까 말이에요.’ 아줌마는 맘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나를 말끄러미 바라보았어요. 그리고는 곧, 버스가 멈추자 허둥지둥 내렸겠지요.(어휴, 저는 아주 속이 시원했답니다.) 그제서야 두 남자 중의 한 명이 돌아앉아서 저에게 조용히 말했어요. 전혀 외국인의 억양이 없는 완벽한 영어로 내게 말하기를, ‘저 아줌마... 맛이 좀 갔죠?’(번역 – 나효신)
한국인의 미국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며 샌프란시스코의 현대 음악단인 이어플레이가 위촉했을 적에 나는 ‘바다/바닷가 2’를 작곡했다. 네 명의 연주자들이 지휘자 없이 연주하다가 첼리스트가 위의 레즈니코프의 시를 읽도록 했는데, 소리를 드높여 누군가를 설득하려기보다는 그저 오늘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저녁 밥상에 가족이 모여 앉아서 말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하도록 했다. 영어와 독어 그리고 한국어로 이 작품은 여러 번 연주가 됐고 늘 좋은 반응을 받곤 했었다.
특히‘저 아줌마... 맛이 좀 갔죠?’ 하는 부분에서는 객석의 많은 사람들이 소리내어 웃곤 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사중주는, 작곡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지휘자와 함께 연주를 했다. 그리고 첼리스트 대신 지휘자가 휘익 돌아서더니 웅변하듯 시를 낭독했다. 게다가 ‘영어로 말해요! 미국에 살지 않아요? 여기서 밥벌이하지요? 그럼 미국말을 해야지요!’,하는 부분에서는 아예 삿대질까지 하면서 매우 큰 소리로 열변을 토했다.
청중도 놀라고 작곡가인 나도 놀랐다. 같은 이야기도 ‘누가’ ‘어떻게’ 하는냐에 따라서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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