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어렸을 적부터 집이 아닌 친척 집이나 친구 집을 좋아해 밖에서 자는 날이 많았다.
요즘 말하는 슬립오버를 밥 먹듯이 많이 한 셈이다. 방학이면 엄마는 열 살도 안 된 내게 배낭을 매주고 강남터미널에서 김천 이모네 집으로 방목(?)을 보내고, 일주일간의 친척 살이로 지갑이 두둑해진 나는 다시 과천의 외할머니 댁으로 물어물어 가는 여행을 조숙하게 하며 일찍이 즐거움을 배웠다.
과천에 동물원과 아파트가 생기기 전이니 족히 40년은 된 이야기다. 남태령 고개를 지나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할머니 댁 앞에 내리면 서울 꼬마가 왔다고 예뻐해 주시던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집으로 오기까지는 열흘. 혹은 보름. 스릴과 설렘 여행 후의 뿌듯함은 지금도 내 마음을 그곳에 가둔다.
돌아다니는 게 얼마나 좋았으면 사람들이 꿈을 물어오면 고민 없이 "스튜어디스요!"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꿈을 꾸어야 하는 시기에도 비행기와 어울리는 고운 언니들의 모습에 내 얼굴을 넣고 내 미래의 직업이 그것이기를 바랐다. 또 누군가 물으면 "참 좋은 내 엄마 같은 엄마요!"라며 두 번째 꿈을 그렸다. 종합세트 편식을 했던 덕분에 평생을 짧은 키로 살게 되면서 처음의 꿈은 좌절되었고, 학창시절 내내 맨 앞자리를 사수해야 했던 나는 대학 때에도 교수님의 침 튀는 자리를 좋아하게 될 만큼 앞자리가 편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내게 있어 꿈과 키는 미묘한 악연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흘러 막연히 선망했던 꿈, 엄마로 사는 지금 늘 ‘산’ 같은 엄마를 흉내 내며 따라쟁이처럼 매 순간 내 모습과 엄마의 모습을 겹쳐본다. “그때 엄마도 나만큼 즐겁고 행복했을까?, 다섯 배 웃고, 다섯 배 우셨을까?” 자꾸만 물어본다. 두 번째의 꿈을 이루고 소박한 감사 속에 살면서 자주 상상한다. 세 번째의 꿈속에 있는 내 모습을. 넓고도 예쁜 방에서 곱게 늙은 뽀로로 할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놀며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동화보다 더 재미있고 활기찬 내 목소리와 웃음이 들려온다. 내 꿈은 책 읽어 주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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