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래 친구들과 눈을바라보고 대화하는 것이 힘들다.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인지 그 중요성이 희미해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요즘 우리는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 않는다. 짝사랑하는 상대를 앞에 두고 설레이는 마음에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 같은 상황들이 아니다.
또 어떠한 죄책감에 감히 눈을 들지 못하는 그 런경우를 말하는 것 또한 아니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진동이 울리는 그 기계에 한없이 곁눈질을 하며 앞에 앉은 상대방의 이야기에는 최소한으로 반응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예의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바쁜 현대인의 고달픈 삶’이라는 감성팔이식의 변명거리를 늘어놓으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내려놓을 수 없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현실적으로 매일 직접 보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적어도 소셜 네트워크로 라도 관계를 이어가야 하고 그러고 싶다는 변명이다.
실제로도 내 또래 ‘친구’들이 이런 변명을 한다. 하지만 이건 바쁜 업무에 치어 소셜 네트워크로 밖에 지인들과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변명이다. 앞에 친구를 앉혀놓고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같이 있는 시간 내내 휴대폰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것일까? 어렸을 때 나는 사람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는 것을 매우 쑥스러워 했다. 특히 어른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예의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학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던 초등학교 6학년때 엄마와 동네 영어 학원을 찾은 적이 있다. 그 학원에선 나의 영어 실력을 확실하게 검사해야 한다며 문법, 듣기 시험, 글쓰기 등의 필기 시험을 보게 했고, 마지막으로 선생님과 인터뷰를 시켰다.
꽤나 큰 책상 건너편엔 처음 만나는 선생님이 앉아 있었고 엄마가 내 옆에 앉았다. 그 선생님은 취미활동, 좋아하는 영화 등 가볍고 재밌는 질문들을 영어로 했고 난 질문들 자체엔 쉽게 대답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쑥스러움이었는지 선생님 눈을 처다보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인터뷰 내내 고개를 숙이고 책상을 바라보며 선생님과 “대화”를 했다. 학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 엄마는 날 혼내셨다.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얘기해야지 예의없고 바보같이 그게 뭐하는 짓이냐 하고 말이다.
그 후로 난 엄마한테 혼날까봐 늘 사람 눈을 억지로라도 쳐다보며 대화를 했고 몇년이 지나고 지금은 그것이 익숙해지고 또 당연해졌다. 나의 눈높이를 맞추고 서로의 표정 변화를 보며 대화하는 것이 좋고 또 이것이 진정한 대화라고 생각한다.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지 허공에 내뱉는 독백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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