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혹은 음악가라면) 누구나 지휘자가 되고 싶은 꿈을 한번쯤 꾸어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휘대에 올라 오케스트라를 호령하는 지휘자의 모습은 카리스마있고 멋져 보인다. 그러나 지휘자란 실상 누구나 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휘자는 음악을 리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악이라는 밑그림에 색채를 덧입혀야 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이다.
그러므로 오케스트라에서는 그 단체의 상임 지휘자를 가리켜 음악 감독이라 부르기도 한다. 즉 오케스트라에도 스포츠의 구단과 마찬가지로 감독이 필요하고, 그 감독의리드 여하에 따라 일류가 되기도 하고 3류로전락하고 말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 정명훈 지휘자가 SF 심포니를 방문했을 때, 첫 곡 메시앙의 작품에서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다음날 신문에는 정명훈때리는 혹평이 크게 실렸지만 그 공연에 실제로 참석했던 한 사람들의 입장에선, 견해가 다소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정명훈이 지휘를 잘 못한 것이 아니라 사실 오케스트라가 전혀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정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간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거나 오케스트라가 정 지휘자를 무시했던가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에 전권을 위임하는,소위 독재형 체재로 이루어져 있다. 지휘봉이란 막대기 하나에 불과하지만 일단 이 막대기가 지휘자 손에 들려지는 순간 지휘봉은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비트 하나에오케스트라 사운드의 강약은 물론, 색채까지도 완전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지휘봉의 위력이다. 그러나 지휘봉이 그러한 위력을 발휘하기까지 지휘자는 먼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갖추어야한다. 음악적 실력, 인격, 리더십, 예술성, 친화력… 이런 것 없이 함부로 지휘봉을 들었다간 앙상블은커녕 망신만 당하다 쫒겨나는 수모도 감내해야한다.
얼마전 KBS 교향악단에서 사임한 함신익이 그 예로, 그것은 지휘자가 얼마나 힘든 위치인가를 보여준 예라 하겠다. 반면 지난 1월베이지역을 방문, SF 심포니를 지휘했던 오스모 반스카는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에서 쫒겨난 지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파업으로 1년이란 세월을 몽땅 날려버렸지만 이 과정에서 스스로 옷까지 벗으며 단원을 보호하고 스스로 총대를 메는 리더십을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반스카는 파업이 끝난 뒤 미네소타에 복귀, 지난 5월초 미네소타를 이끌기도 했다)스포츠의 구단이든 오케스트라이든 우선은 팔리는(인기있는) 매니저(감독)를 원하기마련이다. 60년대 스테레오 붐을 타고 절정의 연주를 보여준 사람은 바로 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의 조지 셸이었다. 그러나 세계 오케스트라계를 주름잡은 황제는 바로 카랴얀이었다. 카라얀의 재주는 사실 별것 없었지만(첼리비다케의 견해) 그는 음악을 팔 줄 아는 안목이 있는 지휘자였다.
첼리비다케가 실황연주에만 안주하고, 셸이 색채의 마술에만 젖어 베토벤의 교향곡을 모차르트화 시키고 있을때 카라얀은 대중의 욕구를 꿰뚫어보는 안목으로 가장 장중한 베토벤을 녹음 편집(?)해 음악 상품화에 성공했다.(물론 예술성의 문제는 차치하고) 전 세계가 경제난에 허덕이고 오케스트라마다 긴축정책으로 재정난 타개에 안감힘을 쓰고 있지만 그럴수록 뛰어난 지휘자의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존경을 사는 지휘자… 그것은 모든 연주자들의 열망이자 오케스트라의 자존심이지만 팔리지 않는 오케스트라란 안꼬없는 찐빵이나다름없다.
LA 필은 히스패닉 팬들을 의식, 잘 나가는20대의 두다멜을 전폭 기용, 오케스트라의상품화에 성공하고있다. -두다멜과 카라얀을구합니다- 재정난이다 뭐다, 지금도 수많은지휘자들이 갈곳 없이 방황하고 있지만… 세계 오케스트라계는 여전히 지휘자 품귀현상이다.
지휘자는 있으되 지휘자는 없다? 지휘자의 길…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아이러니컬의상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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