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여름, 정식으로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는 여름학기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프로그램은 새내기의 삶을 시작하기에 앞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삶의 차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해줬다.
프로그램이 시작하자마자 짧은 설문을 통해 어떤 수업을 듣게 될 것인지도 결정되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역사를 정말 싫어했던 나는 ‘치카노학’(Chicano Studies•치카노란 멕시코계 미국 시민을 지칭하는 말)을 듣게 된데 불만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으로 끝도 없는 책과 논문들 사이에서 얼마나 좌절했는지...
한국계인 나에게 다른 수업보다 비교적 쉬운 수학 수업도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나랑 아무 상관없는 치카노학을 듣게 된 것일까 설문을 원망도 했다. 그 수업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지는 상상도 못하고 말이다.
수업이 시작되고 내 주위에는 아시안계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히스패닉계 친구들이 꽉 차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아시아 역사도 아닌 치카노 역사라니...
"아뿔싸, 여길 당장 나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처음 2시간을 버텼다. 하지만 그다음 날 수업이 계속됐고, 그날 이후로도 나는 매일 보는 학생들과 눈인사를 시작으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특성상 날이 갈수록 그들과 모든 것을 같이 하게 되서, 수업뿐만 아니라 밥도 같이 먹고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겪게 된 그들의 삶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에게 히스패닉계 친구들은 그저 대가족에 학업에 별로 의의를 두지 않는 소수집단에 불과했다. 그들보다 공부를 더 잘 하는 게 당연한 줄 여겼던 나에게 치카노학을 같이 듣는 친구들은 가히 충격을 안겨줬다.
공부를 나보다 더 열심히 한 것뿐만 아니라, 책을 많이 읽어 어휘력도 뛰어났고, 대가족 사이에서 자란 환경 때문인지 사회성도 뛰어났다. 타인종 친구들보다도 넘쳐나는 정 때문인지 아님 그들만이 갖고 있던 흥겨움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난 그들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들의 문화는 물론, 고등학교 내내 들었던 스페인어에서도 매력을 느꼈으며 교수님이 하시는 말 모두가 흥미로웠다. 그 흥미로움은 그해 여름이 가고 나서도 계속되었고, 지금은 다음 여름학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스페인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부디 그들의 문화를 더 만끽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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