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은 항상 멍하다. 몇 달 동안 계획한 여행을 떠날 때나 고대하던 방학이 시작돼 한국에 올 때도 기장님이 안내방송을 통해 목적지에 도착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시지만 뒤바뀐 시차와 더해져 실감은 잘 나지 않는다.
비행의 끝을 알리는 착륙뿐만 아니라 무언가의 끝이 난다는 것은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린다. 오늘은 두 달 동안 한 나의 첫 아르바이트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마다 저녁이나 돼서야 집에 돌아올 생각에 투덜투덜 거리며 출근 준비를 해왔지만, 막상 마지막 날이 되니 별로 기쁘지도 않고 이상할 정도로 이렇다 할 감흥이 없다. 굳이 느껴지는 감정을 집어내자면작별 인사 후에 남는 허무함 정도이다.
생각해보면 아르바이트의 끝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일단 규칙적인 생활이 끝났다는 말이고, 매일 봐서 정든 얼굴들을 더 못 본다는 뜻이며, 이주밖에 남지 않은 여름방학 덕분에 곧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의 포근하고 편안한 생활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조차 덮어 버리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실감이 안 난다는 생각뿐이다.
원래 나는 둔한 성격 탓에 인지가 느린 편이다. 예를 들면 초중고졸업식마다 펑펑 우는 친구들을 보며 당시에는 항상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나중에는 제일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농담 또한 한 박자 느리게 알아듣고 나중이 돼서야 뒷북치며 좋아한다.
하지만 끝이라는 자극에 대한 무감각한 반응은 이런 둔한 성격 탓도 있지만 익숙함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이 더 큰듯하다. 좋게 표현하면 끝과 동시에 오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마음의 준비 상태랄까. 자전거 기어를 바꾸면 적용되는데 시간이 걸리듯이.
이렇듯 나의 뒤늦은 실감의 속도 덕분에 남들에겐 어떤 일이 이미 과거로 분류될 때 나에겐 현재인 것처럼 생생하다. 이런 나를 한 친구는 미래, 현재, 과거를 사는 사람 중에 과거에 사는 사람 같다고 표현했다. 처음에는 그 표현 또한 좋게 받아들이지 못해 수긍은커녕 부정했지만, 이제와 보니 꽤 맞는 평가인 거 같다.
느린 인지 속도가한 며칠은 내 바이오리듬에도 좀 적용됐으면 하지만 이미 내일부턴 늦잠을 자도 된다고 인식된 듯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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