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냉장고가 고장 났다.
전날 밤 냉장고 주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식구들과 그 정체를 찾아 나섰지만 이내 그 냄새가 사라지면서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겼다. 다음 날 아침 냉동실 문을 열어보니 냉기는 사라지고 내용물들이 녹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전날 밤의 불길한 예감과 정체모를 냄새가 서로 ‘클릭’하면서 연결되었다.
아이들 개학을 앞두고 도시락 반찬으로 사둔 식재료들과 세일을 한다기에 미리 구입해서 냉동실 가득 채워둔 것들이 염려되면서 빨리 시원한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 가까운 이웃에 사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서 친구네 널찍한 냉동고의 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또 얼음을 사다가 집에 있는 아이스박스들을 채우고 냉장실의 음식들을 옮겨놓았다. 그리고 그동안 이것저것 해먹고 싶어서 사두었지만 게으름으로 미뤄두었던 반찬재료들과 더운 날씨에 끓이기 귀찮아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국거리들로 음식을 했다.
아이들 방학을 시작하면서 매끼 해먹는 음식이 지겨워서 했던 잦은 외식과 쉽게 할 수 있는 일품요리들만을 해먹었던 것과는 비교되는 찌개나 국에 몇 가지 반찬이 오르는 제대로 된 집 밥상이 차려지는 날들이었다. 냉장고가 고장이 난 후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상의 작은 변화를 알게 되었다.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먹고 남은 음식들과 혹시나 하고 보관해두었던 양념들을 모두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중에 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일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은 앞으로 사용할 일이 없는 물건으로 생각하고 과감하게 정리하라는 말씀이 생각나면서 집안의 다른 물건들도 함께 정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련과 욕심으로 끌어안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정리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거나 도네이션 센터로 보내고 나니 기분도 상쾌해졌다. 개학을 앞두고 아이들과 한 백투스쿨 샤핑에서도 꼭 필요한 학용품만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일들을 통해 어느 틈엔가 내 생활 가운데 슬그머니 들어와 어느덧 ‘쾅’하고 자리 잡고 있었던 무계획과 게으름, 그리고 욕심들로 인해 내가 안 해도 되는 걱정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냉장고 고장으로 작은 불편함은 겪었지만 생활전반을 돌아보면서 반성과 함께 얻게 된 작은 깨달음으로 감사한 한주 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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