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오래 쓰면 그 기능이 약화되고, 자주 고장이 난다. 사람의 몸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의술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치매가 크나큰 윤리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로 대두되며,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이 되었다. 흔히 노쇠에 따르는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를 혼동할 수 있는데, 치매는 기억력뿐만 아니라, 언어 구사, 판단력, 방향 감각이 감소되며, 성격도 빨리 변하는 질환으로 안다.

최근에 경험한 내 건망증으로 인한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를 나누고자 한다. 직장 동료에게 들려주었더니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첫 번째, 직장 사무실 전화로 아내의 셀폰에 통화를 시도하려는 순간 책상위 내 셀폰에 신호가 와서 사무실 전화를 내려놓고 내 셀폰을 집어 드니 신호가 끊어졌다. 누가 빨리도 전화를 끊는다 생각하고, 또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데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좀 신경질이 나 “도대체 어떤 X이 이런 짓을 하나” 생각하며 상황을 파악하니 아내에게 전화한다는 것이 나의 셀폰에 전화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두 번째, 바로 지난 일요일 아침 교회가려고 지갑을 찾는데 도무지 그 행방이 묘연했다. 더구나 그날은 노인 아파트에 사시는 권사님들을 주일에 모시고 오는 분이 몸이 아파 나에게 차량봉사를 부탁한 터이므로 일찍 집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참을 찾다가 차분히 생각하니 그 전날 화창한 날씨에 근처의 공원에 차를 몰고 가서 조깅을 한 기억과 동시에 지갑을 자동차에 숨겨둔 생각이 났다.

쾌재를 부르고 지갑을 찾아 자동차에 탔는데, 이번에는 열쇠꾸러미에 그 자동차 열쇠가 없는 것이다. 거 참 이상하다 했는데, 곧 그 전날 조깅을 할 때 그 열쇠만 뽑아 양말 속에 집어넣고 뛴 기억이 퍼뜩 났다. 부리나케 집으로 다시 와 빨래 통에서 그 양말을 비롯하여 샅샅이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자꾸 가고 초조해지며 혹시 여분의 열쇠가 집에 있을까 하여 교회 일로 먼저 떠난 아내에게 전화를 몇 번 시도해도 도무지 받지 않고, 메시지 남기라는 얄미운 소리만 들린다. 또 머리를 굴려 교회 주방에는 일찍 나와 봉사하는 분이 있으므로 그리로 전화해서 아내와 연락을 취하려 하는데, 이번에는 주방 전화번호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없이 교회 사택에 사시는 담임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주방전화 번호를 물으려 하니 이 분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차편을 기다릴 노인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 할 수 없이 집사님 한분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 하고 차편 제공을 부탁했더니, 이제 막 일어났고 집이 멀어 힘들겠다며 교회 근처의 다른 집사님에게 부탁해 보라고 전화번호를 주어 통화를 시도했더니 이 분도 묵묵부답이다.

그 전날 차고에 잠깐 내려갔던 것이 생각나 양복 윗옷까지 벗고 샅샅이 뒤졌지만 역시 실패했다. 거의 포기상태로 다시 거실로 돌아와 무의식적으로 탁자위에 놓여 있는 애견의 장난감을 들추니, 앗 그 까맣고 귀여운 열쇠가 그곳에 턱 놓여 있었다. 이루 말 할 수 없이 기뻐 급히 자동차로 뛰어가 조금 운전하고 가다 보니, 이번에는 헌금과 전화기가 들어있는 양복을 다시 입는 것을 잊고 신나게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듯 얽히고 꼬인 이야기는 마치 지어낸 것 같지만 100% 리얼이다. 건망증은 불편하나 하나님의 고마운 선물이다. 아리고 쓰린 마음의 상처, 슬픔, 원통함, 미움 등의 감정이 점차 희미한 기억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