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5년부터 5년마다 알프스기슭 소르데볼로에서
▶ 종교 상관없이 3세부터 72세 400명 주민들 출연
소르데볼로 수난극의 한 장면. 말 탄 로마 병정 뒤로 십자가를 진 예수가 걸어가고 있다. 400명 주민들이 출연하는 이 연극공연에서 출연료를 받는 유일한 배우는 말들 뿐이다.
지난 6월 ‘그리스도의 수난’을 성공리에 공연한 소르데볼로 주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올해로 200주년을 맞는 이 마을 연극 공연을 보러 오는 방문객은 연 4만명에 이른다.
가끔은 놀란 말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뛰기도 했다. 마이크가 고장 나 먹통이 되거나 끼익 쇳소리를 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태리의 알프스 산기슭 작은 마을 소르데볼레에서 지난 6월 서늘한 어느 저녁에 펼쳐진 ‘그리스도의 수난’ 공연은 별 문제 없이 진행되었고 열정적으로 제 역할을 해낸 마을 주민 아마추어 배우들은 활기에 차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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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까지 일주일에 3번씩, 비가 오든 해가 쬐든, 이 마을 주민들은 예수의 최후를 다룬 수난극을 계속 무대에 올릴 것이다. 그들의 부모들과, 부모의 부모들과, 부모의 부모의 부모들이 그랬듯이.
이 마을 1,300명 주민의 절반 이상이 한 가지 이상의 역할을 맡아 공연에 참가하고 있다. 3세부터 72세까지의 400명이 배우로 무대에 오르고 또 다른 수백명은 몇 달에 걸려 ‘예루살렘’ 무대를 제작하는데 온 정성을 쏟았다. 매 공연에 앞서 마을 중앙로에선 출연배우들의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나머지 주민들은 길가에 늘어서 환호를 보낸다. 수난극 공연은 교회의 축복을 받지만 캐스팅을 비롯한 전반 관련사항은 종교와는 무관한 주민 전체의 행사다.
수난극 공연은 “소르데볼로에선 집착 같은 것”이라고 감독 셀레스티노 포글리아노는 비유한다. 매 5년마다 펼쳐지는 이 공연을 위해 몇 달 전부터 마을 전체가 매달려 왔다면서 그는 “우리의 유전인자(DNA)”라고도 말한다.
금년이 공연 200주년을 맞는 해다.
이 마을 주민 대부분이 그렇듯이 엔지니어인 포글리아노도 5세 꼬마였던 1960년 공연에 처음 출연하기 시작해 그 후 차츰 대사가 있는 배역으로 올라와 예수의 역까지 맡아보았다. 1870년 자신의 고조부도 예수 역으로 출연했으며 자신의 아들도 어린이 버전의 수난극에 예수로 출연했다면서 그는 대대손손 이어오는 가족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이태리 교회출석률의 뚜렷한 감소가 보여주듯이 유럽은 점점 더 종교와 멀어지며 세속주의로 빠져들고 있지만 수난극 공연은 아직도 유럽 전역에서 지켜지고 있는 전통 중 하나다. 지난달에만도 유럽 15개 국가의 90개 수난극 공연단이 소르데볼로에 모여 제31차 연례 유럽수난극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대부분 수난극은 부활절 무렵에 공연되지만 소르데볼로에선 늦봄으로 밀렸다가 연장공연을 하면서 여름과 초가을까지로 공연기간이 늘어났다.
15세기에 쓰여진 대본으로 공연하는데 줄거리야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지만 문체가 장황하고 어려워 이태리인들조차 대사 이해에 애를 먹는다. “우리는 기량보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하니까 별 문제가 없다”고 낮에는 시큐리티 전문가로 일하지만 밤에는 도둑 역할의 아마추어 배우인 한 주민은 말한다. 이사 간 주민들의 마음속에도 소르데볼로 수난극의 전통은 강하게 남아있는 게 보통이다.
금년에 예수로 출연하는 마르코 칼디는 서핑 및 스쿠버다이빙 강사다. 6년전 인도네시아 발리로 이사 갔지만 연극 출연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자신을 거의 마비상태로 몰아가는 무대공포증도 그의 마을연극 사랑을 막지는 못했다.
“난 10미터짜리 상어에게 공격도 당해보았고 폭풍 속에 던져지기도 했지만 그런 때의 두려움은 무대에서 관객과 마주 설 때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그는 “공연 중 가장 편안해 지는 것은 십자가상에서 죽을 때”라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이름난 수난극 공연은 ‘오베람머가우’라는 독일 작은 마을에서 1634년부터 매 10년마다 펼쳐지는 무대다. 총 8시간 공연으로 중간에 3시간의 식사 브레이크를 갖기도 한다. (소르데볼로에서는 중간 휴식 없이 2~3시간 공연한다) 명성도 높아 전 세계에서 약 50만명의 관객이 모여드는 공연이다.
소르데볼로는 그보다 규모가 작아 아직은 연 관객이 4만명 정도이지만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오베람머가우 주민들은 출연료를 받고 이익금을 나눠 갖지만 소르데볼로 공연에서 출연료를 받는 것은 14마리의 말뿐이라는 것. 이익금은 모두 자선에 사용된다.
소르데볼로도 홍보에 신경을 쓰고 있다. 2004년엔 비를 피할 수 있는 2,400석의 원형극장을 건축했고 2010년엔 미국 여행사와 제휴를 맺어 해외관광객 유치에 노력하고 있다. 금년 시즌엔 40개 미국 투어그룹이 수난극 공연의 표를 예매한 상태다.
이곳의 주산업이었으나 사양길로 접어든 섬유산업 부진으로 인한 로컬경제 불황에서 탈출할 계기를 수난극 공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커지고 있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버려졌던 농가들은 정겨운 민박스타일의 숙박업소로 재정비되고 수난극 관련 공예품을 전시하는 뮤지엄도 신설되었다.
수난극 공연이 없는 해엔 원형극장이 컨서트홀로 사용되거나 각종 국제대회 연례회장으로 대여된다. 금년엔 국제모터사이클 집회가 열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지요. 우리의 수난극을 이태리 밖에도 알리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라고 막 공연을 마친 한 주민은 말했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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