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8년 유전 발견, 한인들 모여들기 시작
▶ 20년 전부터 배로우 시내 상권 꽉 잡아
※ 광복 70돌 특별 기획
【제2편 ‘동토 녹이는 코리안 스피릿’ 알래스카의 한인들】
① ‘땅끝 마을’ 배로우
미국의 마지막 개척지 알래스카. 코끝을 에이는 툰드라의 한파가 숨을 조이듯 몰아쳐도 100년 전 불모의 설원에서 금광을 캐던 선구자들의 개척정신이 지금도 뜨겁게 살아 숨 쉬는 무한의 보고다. 이곳은 한인들에게도 희망의 땅이다. 한적한 남쪽 항구도시 수워드에서부터 위도 상으로 세계 정상에 있는 최북단 도시 ‘배로우’에 이르기까지 한인들이 뿌리를 내리지 않은 곳이 없다. 이들은 알래스카의 정신을 따라 온갖 자연의 시련과 현실의 난관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그리는 정상의 삶을 향해 꿈을 키워가고 있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 최북단, 북위 71.3도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세상 꼭대기 마을(Top of the World) ‘배로우’(Barrow), 겨울철 30일 이상 24시간 캄캄한 밤이, 여름철 30일 이상 24시간 환한 낮이 펼쳐지는 이 오지에도 한인 이민자들이 35년 넘게 둥지를 틀고 개척의 삶을 살고 있다.
■LA에서 3,000마일, 북쪽 땅 끝 마을 ‘배로우’
하루 종일 밝은 날(백야·midnight sun)이 계속되는 7월이지만 안개가 시내 상공 약 100피트 위를 수시로 덮는다. 짙은 안개로 배로우 공항 1차 착륙 실패. 보잉 737-800 승객 약 100명을 태운 기장은 “남은 연료로 2차 착륙을 시도하겠다”고 방송했다.
낯선 세상 작은 공항은 활주로를 어렵게 드러냈다. 비행기에서 야외계단으로 내리자 공항 직원이 “코리안 만나러 왔느냐”고 묻는다. 추위가 바로느껴지는 화씨 35도, 한인들이 여기서 사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나도 모른다. 근데 코리안들이 만드는 음식은 맛있다”고 답했다.
배로우 소도시는 동서남북 2~3마일 규모다. 시내를 한 바퀴 걷는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 먼지 날리는 비포장 도로, 땅에 말뚝을 박아 3피트정도 떠 있는 집들, 열악한 주거환경, 을씨년스러운 황량함도 밀려온다.
‘한인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곳까지 왔을까’라는 질문이 절로 나왔다.
■배로우의 한인들 현황
2015년 배로우 상주인구는 4,429명(취업인구 약 44%)으로 원주민이 주류(약 61%)고 백인, 흑인, 한인 등 아시아계는 소수계 주민이다. 배로우 거주 한인은 유동인구 포함 약 50명이다. 한인 6가구 중 3가구가 2~3세대 자녀와 함께 산다. 6가구를 제외하곤 홀로 돈을 벌고 있는 40~70대 중장년층이다. 30~40초반 연령대는 없다. 이들 직종은 식당주인과 종업원 약 25명, 택시기사 약 4명이 가장 많고 차량정비사, 보건소 직원, 약사, 은행원, 기념품 판매원, 공항 직원 등이다.
특히 한인들은 20년 전부터 배로우 시내 상권을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인 업주들은 소도시 식당 7개 중 노던 라이트(Northern Lights), 오사카(Osaka), 샘&리(Sam&Lee’s), 아틱 피자(Arctic Pizza), 배로우 키친(Barrow Kitchen) 5개와 택시회사 아크틱캡(Arcticab)을 운영한다. 최근 몇 년 사이 J&J 차량정비소(J&J Auto Repair)와 기념품점도 문을 열었다.
배로우 공항 앞 에어포트 인 매니저는 “한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동네 사람들이 수시로 이용하는 곳으로 음식 맛이 다들 좋다. 관광객이 들러야 하는 필수코스”라고 추천했다.
한인 업주들은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하고 일주일 또는 격주로 하루 쉰다. 샌드위치, 햄버거, 스파게티, 피자 등 메뉴가격은 15~30달러. 온 가족이 업소 운영에 달라붙어 차근차근 부를 쌓아올렸다. 노던 라이트 안주인 백혜순씨는 “인구밀집도가 낮고 유동인구가 한정돼 있어서 오랜 시간장사해야 매출이 는다”고 설명했다.
북극권 마을에서 혹독한 추위와 외로움을 이겨낸 대가는 경제적 성공이다. 업주들은 대부분 수십만달러 자산과 자녀 교육용으로 앵커리지 등에 주택을 갖고 있다. 배로우에서 가장 오래된 샘&리 식당과 택시회사 2개를 운영하는 김형용씨는 “이누피엣 원주민들이 유전 수익 배당금을 많이 받기 때문에 사업을 하면 80%는 살아남는다. 외지에서 10년 일해 벌 돈을 여기서는 5년 안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배로우 정착의 역사
배로우 한인 역사는 1968년 북동쪽으로 200마일 떨어진 프르드호 만에서 엄청난 유전이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배로우가 유전 시추회사 및 북극권 지방자치 정부(North Slope Borough) 본거지로 부상하자 한인들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하나 둘 모여든 것.
한인들은 배로우 정착 초기 식당, 건축회사 등에 노동력을 제공하며 목돈을 모았다. 고용주들은 한달 이상 일할 직원이 필요하면 대부분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 한인 업주들에 따르면 현재 단순노동은 시간당 12~15달러, 파트타임은 시간당 17~20달러에 형성됐다.
이곳 업체들에서 일하는 한인들은 동네가 워낙 작고 돈쓸 일이 없다보니 1년에 3만~4만달러를 저축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다만 시내 유일의 허름한 식료품점에서 병물 500ml 한 병이 2달러, 6개들이 콜라한 팩에 6.99달러, 우유 한 통에 10달러, 사발면 한 개에 3달러에 달하는 살인적 물가는 부담이다. 개솔린 1갤런에 7달러란 안내판이 LA보다 물가가 3배 비싸다는 말을 실감하게 만든다.
한인 업주는 “춥고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종업원 중 자존심에 상처받는 분들도 많다. 유흥 환경은 없고 식당과 숙소만 오가는 환경 덕에 서너달 현금을 모으면 밖으로 나갔다가 몇 달 후 다시 찾아오는 이도 몇 있다”고 말했다.
아틱 피자에서 3년째 일하는 60대 한인 여성은 “이곳에서 생활하며 마음의 ‘화’를 다스렸다”며 “사업이 망한 뒤 믿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계속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마음의 평안을 얻으며 네바다에 사는 남편과 자식들을 1년에 한 달 정도 만난다”고 말했다.
LA 가주마켓에서 일했다는 박규만(70)씨는 2001년 배로우에 첫 발을 디디고 나갔다가 2012년 샘&리 식당을 다시 찾았다. 그는 “LA나 여기나 일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유흥비로 돈쓸 데가 없다. 1달러라도 벌어야 남지”라며 자정 넘어 음식배달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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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 설원 하얀 밤의 도시 ‘배로우’
북극권 아메리카 대륙 최북단 타운, 배로우시는 1825년 북극해를 항해하다 ‘포인트 배로우’(Point Barrow·북위 71.38도, 서경 156.46도)에 첫발을 디딘 대영제국 함대 선장 해군제독 존 배로우 경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다. 서기 500년대부터 원주민들은 배로우를 ‘눈올빼미(Snowy Owls)를 사냥하는 곳’(Ukpeagvik)으로 불러 왔다.
배로우 시내 윌리 포스트-윌로저스 메모리얼 공항(Wiley Post-Will Rogers Memorial Airport)에서 북쪽 해안을 따라 약 10마일을 가면 아메리카 대륙 최북단인 포인트 배로우가 나온다. 이 길목에는 지구상 인간이 집단을 형성하고 사는 최북단 도시임을 알리는 ‘Top of the World’ 표지판이 북극고래(Bowhead Whale)의 커다란 머리뼈로 둘러싸여 있다.
연중 기온은 약 120일만이 빙점(freezing point 화씨 32도) 이상을, 약 160일은 화씨 0도 이하로 내려간다. 매년 11월부터 1월까지는 해가 안 뜨고 5월부터 7월까지는 해가 지지 않는다.
한겨울 눈보라가 칠 때는 공기속 수분이 모두 얼어붙는다. 현지 한인들은 겨울철 눈만 보일 정도로 옷을 껴입지만 “추위 때문에 손톱이 깨지는 일을 종종 겪는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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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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