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출신 차정비업소 개업 문전성시
▶ “몇 년 더 벌어 한국 갈 것” 부푼 꿈
※ 광복 70돌 특별 기획
【14세 소녀 눈으로 본 배로우 한인 24시】
내 이름은 백승아, 올 해 열 네 살인 북미 최북단 땅끝 마을 배로우의 주민이다. 한국일보 미주본사 취재팀이 지난 2001년 배로우를 처음 찾았을 때 생후 6주였다. 우리집은 이곳 배로우의 한인 가족 중 가장 많은 식구를 두고 있다. 엄마 백혜순(53)·아빠 백필현(59), 큰언니 신디(29·은행근무), 둘째 백희(24·공항근무), 셋째 승이(19 앵커리지대 유학), 넷째 승미(18), 나까지 일곱 식구에 큰언니가 결혼해 조카 데빈(10), 케이든(7), 로건(5)까지 ‘3대’ 11명이 배로우에 살고 있다.
엄마 아빠 덕에 다섯 자매 모두 한국말을 잘한다. 매년 한 번씩 한국에 나가 청국장과 된장찌개를 먹는 일이 가장 신난다.
■오전 10시 노던 라이트
1996년 2월 문을 연 우리집 식당 노던 라이트(Northern Lights, 907-852-3300)는 중식, 양식, 한식, 일식을 모두 요리한다. 엄마 아빠는 순번을 바꿔 주방장을 맡고 한인 종업원 4분은 주방보조와 음식배달에 나선다. 식당은 오전 11시30분 문을 열어 오후 11시면 문을 닫는다.
아빠는 “식당운영 초반 말이 안 통하고 뭐 하나 고장 나면 다 내손으로 해결해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엄마는 미국에 이민 온 1995년 4월23일을 기억하며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식당을 찾는 사람은 배고프다. 배고픈 사람을 야박하게 대하지 말자’가 엄마의 생활신조다. 외지 사람이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면 요리법을 듣고 뚝딱 만들어주기도 한다. 14년 만에 찾아온 한국일보 기자에게 라면과 캘리포니아롤도 대접했다.
2007년 5~8월은 우리 가족에게 참 힘든 시기였다. 주방 조리기구 기름에 불이 붙어 엄마가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엄마는 시애틀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돼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다.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온 엄마는 3일 뒤 같은 병원, 똑같은 병상에 누워 있는 화상환자 아빠를 돌봐야 했다. 의료진들도 황당했던지 “두 분이 천생연분”이라고 위로했다.
어렵게 재활에 성공한 엄마 아빠는 주방이 무서웠지만 식당운영을 재개했다. “너네들 키우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죽지 않고 살았고, 다시 말하고 먹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고 엄마는 말한다. 두 분은 50대 인생은 하나하나 정리하는 시기란다. 다만 몸이 허락할 때까지 노던 라이트 식당 문을 계속 여실 생각이다.
■오후 3시 오사카·배로우 키친
배로우 정착 10년째인 김민호(51)·리즈 김(50) 아저씨 아줌마는 한인 종업원 여덟분과 스시집 오사카(Osaka, 907-852-4100), 배로우 키친(Barrow kitchen) 식당 두 곳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운영한다.
민호 아저씨는 아이디어가 많다.
10년 전 샘&리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다 성공 가능성을 보고 석 달 만에 오사카 식당을 인수했다. 배로우키친은 최근 오픈한 부페식당이다.
아저씨는 2~3년 전부터 마을 원주민들이 인터넷 샤핑에 한창이고 자치정부가 학교와 체육관 등 각종 복지시설을 최고로 만들었다며 ‘배로우시 변화’를 바랐다.
아저씨는 “한인들이 겨울 꽁꽁 언 마을 앞바다 위에서 얼음축제를 열면 전 세계가 배로우를 주목하지 않을까?”라고 진지하게 말하곤 한다. 아저씨 부부는 두 식당을 운영하며 하루 평균 매출 5,000달러는 번다고 알려줬다. 불황이 뜸한 배로우를 못 떠나는 이유기도 하다. 민호 아저씨는 “대일(20)이 하고 보은(23)이가 캘리포니아 가든그로브에 산다. 3년 만더 일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후 7시 J&J 자동차 정비소
J&J 자동차 정비스(J&J Auto Repair, 907-855-0401)는 한인 아저씨들의 사랑방이다. 아빠와 택시기사 아저씨들, 다른 식당 아저씨들까지 틈나는 대로 찾아와 놀다간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주인 아저씨 역할도 크다.
6년 전 이곳 정비소에 취직했던 LA 출신 제임스 김(56) 아저씨는 3년전 차량정비소를 개업했다. 우리 동네 원주민들이 너도나도 자가용을 구입하고 있다. 단, 겨울철 화씨 -40~60도가 보통인 이곳 날씨와 비포장 도로 여건상 차가 자주 고장난다. 정비소 안에서 히터를 켜고 현대 싼타페를 고치던 아저씨는 손님이 찾아오자 격납고 같은 정비소 문을 열었다.
김 아저씨는 “정비소 세 곳 뿐인 여기가 블루오션”이라며 “내가 차 수리비로 시간당 120달러를 받는다. 한달 평균 30~40대를 고치는데 복잡하고 경쟁 심한 LA보다 여기가 좋다”고 자랑했다. 김 아저씨 아내인 제스민 유(53) 아줌마는 우리 마을에 두번째 미용실을 차리려고 LA에서 미용학원을 다니고 있다. 막내딸인 민지(22) 언니는 배로우 보건소에서 일자리를 잡았다.
■오후 11시 아틱 피자
미트볼 스파게티와 피자가 맛있는 아틱 피자(Arctic Pizza, 907-852-4222)는 한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유만식 할아버지는78세, 유용순 할머니는 65세. 두 분은 1980년 8월2일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이민 왔다가 1998년 배로우에 정착했다.
포틀랜드 한인 이민 1세대라는 두분은 ‘페이먼트 인생’이 싫어 배로우를 찾았다. 당시 한인 운영 식당 쇼군 종업원으로 취직한 두 분은 월급을 꼬박꼬박 저축했고, 버티지 못 하면 쓰러진다는 자세로 마음을 다잡았다.
“악착같이 요리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유 할아버지는 2006년 저축했던 30만달러와 대출금 20만달러로 배로우 한 아파트(18유닛)를 샀다. 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갔다는 할아버지는 “투자하니 돈이 불었다”며 3년 전 70만달러에 아틱 피자 가게 2층 건물까지 사버렸다.
두 분은 일거리가 있어 배로우 생활을 버텼지만 요즘 부쩍 포틀랜드 천둥번개를 그리워한다. 할아버지는 “1년만 더 일하고 한국일보 16년 독자였던 포틀랜드 삶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새벽 1시30분 샘&리 레스토랑
다른 식당들이 문을 닫은 오후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샘&리 레스토랑(Sam&Lee’s Restaurant, 907-852-5556)은 손님이 몰리고 배달 주문이빗발친다. 샘&리 식당 종업원으로 시작해 1989년 10만달러로 식당을 인수한 김형용(67) 아저씨는 배로우에서 34년째 살고 있다. 아저씨는 “인생은 잘 살기 위한 투자! 알래스카에서 제일 잘 사는 배로우 주민들 덕분에 먹고 산다”고 강조한다. 마을 사람들은 아저씨가 이런저런 행사 때 베푸는 모습도 높이 산다.
김 아저씨 식당은 중식, 햄버거, 샌드위치가 잘 나간다. 한국 해병대 모자를 쓰고 일하는 아저씨는 이날 음식 주문을 130개 이상 받았다. 아저씨는 60~70년대 한국식 정서가 살아있는 배로우 원주민들을 무척 챙긴다.
아저씨는 우리집처럼 성희(23)·성미(22)·성아(17) 언니, 영곤(14)이를 여기서 낳고 키웠다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자정 전후 배달주문이 끊이지 않지만 식당을 찾은 손님 모두의 안부를 묻는 일도 잊지 않는다. “나도 생활하기 편한 따뜻한 도시가 그립다. 근데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더라. 우리 성실하게 살자”
◆취재협조: 앵커리지 관광청(www.anchorage.net), 페어뱅스 관광청(explorefairban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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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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