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목마를수록, 꿈은 푸르러… 마음은 늘 라스팔마스(스페인의 휴양지- 낙원의 경치라고 함)로 달려가곤 한다. 소라의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곳… 파도 소리 들려오는… 별유천지에서의 황금빛 자유… 그 황홀한 상상은 꿈이 불가능하기에… 아니,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더욱 쫓기는 범인처럼, 목마르게 오아시스를 찾아… 살아있다는 표징을 기지개 펴 왔는지도 모른다.
미국에 와서 느낀 것은 이곳의 사람들이 대체로 지상낙원의 꿈… 삶에서 여유와 풍요로움을 가꾸며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삶이 그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면 이곳의 삶은 생활 속의 여백… 여유를 어떻게 누리느냐 하는 것이 다른 것 같았다. 그와의 관계, 아니 그 목소리에 대한 특이한 인연도 바로 그날, 수상스키를 떠나던 날에 시작됐다. 연휴인데다 날씨까지 좋아 회사 직원 모두 가족 동반으로 어느 호반의 도시로 물놀이를 떠났다. 싱글이었던 관계로 피크닉을 사절하고 당직을 자원(?), 회사에서 홀로 고독을 씹고 있었다. 토요일에 할일이란 그저 걸려오는 전화만 받으면 됐는데 점심때 쯤해서 전화벨이 울렸다. 으례히 광고 의뢰나 신문구독에 대한 전화가 대부분이었는데 웬 미국인이 영어로 쏼라거리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하는 나에게 전화기 저편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예스 하세요’ 나중에 알고보니 콜렉트 콜이었다. 미국에 막 도착한 초년병에게, 그런 통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꿈엔들 알았으리요.
마치 관악기의 긴 달팽이 관을 통해 울려퍼지는 음악처럼, 굵고 부드러웠던 저음의 목소리… 물론 그 남쪽나라의 바람같았던 저음은 전화기 먼 저편에서 들려오는 하나의 목소리에 불과했지만 문제는 그와의 첫 개인적인 대면이 왜 할필이면 그때 그 상황이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그의 목소리는 웬지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어두운 절망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목소리는 선택된 자에게만 부여되는, 신의 선물일 것이다. 음치에다 자랑거리라곤 별로 없는 나의 경우, 왜소한 자신이 절망스러워 늘 소심하게 음악 속으로 도피하곤 했는데 어느날 그는 어느 성가제에 등장, 이태리 가곡 ‘무정한 마음’을 너무도 폼나게 불렀다. 왜 하필 ‘무정한 마음’이었을까? 그 때 그 감미로웠던 선율이 너무 부러운 나머지 마치 어울리지 않는 명품을 바라본 듯, 그만 그 음악을 외면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후 그것이 그처럼 오랫동안 마음 속에서 굳게 닫힌…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그가 죽은 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단 한번도 ‘무정한 마음’을 클래식이라고 인정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단 한번도 마음 문 열어, 그의 성악을… 진심으로 바라본 적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노래하는 삐딱새라 부르곤 했다. 감성이 예민하고 늘 신경질적이었으며, 자기만의 라스팔마스에 빠져, 다른 나라의 국민을 자기 세계로 편입하길 싫어했다. 정장이나 타이를 맨 모습은 볼 수 없었고, 머리따로 수염따로… 항상 캐쥬얼하게 그려진 스케치같았던 그… 그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유별났던 것처럼 삶과 너무 일찍 하직하고 말았다. 지금쯤 죽음 없는 그만의 비밀… 노래가 있는 라스팔마스에서 영면하고 있을까?
살바토레 카르딜로의 곡 Core’ngrato는 ‘은혜를 모르는 마음’ 혹은 ‘무정한 마음’ 이라는 뜻으로, `카타리 카타리’ (Catari Catari)라는 제목으로 부르기도 한다. 1908년에 발표됐으나 3류가요라는 혹평을 듣자 카르딜로는 그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만다. 어느 수녀가 되어 버린 여인에 대한 슬픈 사랑을 담고 있는데, 미국에서 유명해지자 다시 이태리로 역수입, 1951년에 만든 이태리 영화 ‘Core ‘Ngrato’의 주제곡으로도 사용됐다는 아이러니가 전해지고 있다.
Catarì, Catarì,/pecche’ me dice sti parole amare? … 카타리,카타리 당신은 왜 내게 말하는가요? /쓰라린 얘기만을/ 왜 내 마음을 괴롭히는 얘기만을 나에게…/ 카타리…. 인생이란 술이 있으면 잔이 없다고 했던가… 나의 애청곡은 아니지만, 그러기에 더욱… 나에게 없는 많은 것을 보여주었던 그가 안타깝게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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