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陶磁器)는 점토로 만들어 높은 온도에서 구워 낸 그릇이다. 흙이 기본 재료이므로 물자의 이동이 쉽지 않았던 과거에는 흙을 구할 수 있는 땅 즉, 지구 표면의 지질학적 특징에 따라 그 종류 및 표현이 제한되는 공예품이 도자기였다. 이른 시기부터 인류문명이 시작되었던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동서로 길게 뻗은 대륙의 양 쪽에서 서로 다른 도자 문화를 발전시켰다. 중국 및 한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지역은 화강암지대를 기반으로 섭씨1,000도 이상의 고화도(高火度) 자기(磁器) 문화를 발전시켰는데, 이는 고온에서 화학적 변화를 거쳐 유리처럼 매끄럽고 단단한 성질로 변하는 장석질 자기점토가 풍부했던 덕분이다.
반면, 사막 지역인 서아시아와 석회암 지대가 넓게 분포하는 유럽 지역은 일정 온도 이상 가열되면 마치 물엿처럼 녹아버리는 점토가 흔히 산출되었고, 이에 따라 저화도(低火度) 도기(陶器) 문화가 형성되었다. 국가 및 지역이 위치한 지리적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도자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수 백년의 시간 동안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동서양의 도자 문화는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빈번해 지고 바닷길을 통한 대규모 무역이 가능해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이란, 터키, 이집트와 같은 이슬람 국가는 물론 유럽의 여러 국가에 중국의 자기가 소개되면서 각국의 왕족 및 귀족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자기는 단단하게 반짝이는 보석과 같이 여겨지며 수집 열풍이 불었고 급속히 커진 수요에 맞춰 17세기부터 본격적인 대규모 도자기 무역이 이루어졌다. 당시 동서양 도자기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도자기는 하얗고 단단한 바탕에 진한 푸른색의 장식이 어우러진 청화백자(靑畵白磁)였다.
강한 장식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중국의 청화백자는 곧 서방 세계에서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잡았고 상류사회는 물론,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중산층 및 상인계층에게까지 사랑받았다. 청화백자를 비롯한 동방의 무역품이 서양의 시장으로 전파되는 데에는 각국이 설립한 동인도 회사의 역할이 컸다. 가장 큰 규모의 동인도 회사를 가지고 있었던 네델란드에서는 상업을 통해 급격히 성장한 중산층 소비자들의 지위가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확장되었고, 신교를 지지하면서 막대한 부를 손에 넣은 이들의 이국적 취향을 반영한 회화까지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정물화 장르를 들 수 있다.
여러가지 정물을 사실적으로 그린 네덜란드 정물화는 성화를 다루었던 전통 대신 상징성을 지닌 정물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현실 세계를 반영하면서 삶의 허무 등의 메세지를 담아냈다. 풍성한 과일, 빵, 굴 등의 먹거리와 함께 회중 시계, 은쟁반, 유리잔 등이 등장하는 이 그림들 가운데에는 종종 중국의 청화백자가 묘사된 경우가 발견된다. 이제 막 자기(磁器)의 매력에 눈 뜨기 시작한 사람들의 열망이 그림 속에 묘사된 것이다.
<이미지 정보>Abraham van Beyeren (Dutch, 1620/21-1690)A Fruit Still Life, c. 1655 Oil on canvasPurchase, 2005 (13143.1)Hanging scroll; ink on silkGift of Sheldon Geringer, 1997 (8778.1)Wood with traces of pigment
아브라함 반 베이애런 (네덜란드, 1620/21-1690)과일이 있는 정물, 1655년경캔버스에 유채 2005년 구입
오 가 영
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고송문화재단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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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영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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