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가영 큐레이터와 함께 하는
▶ 때로는 지지리 못생긴듯 싶으면서도 ‘잘 생긴’ 그릇
![[창간 43주년]호놀룰루 미술관 한국관 나들이 (18) [창간 43주년]호놀룰루 미술관 한국관 나들이 (18)](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5/11/09/20151109122237561.jpg)
“얼핏 보면 누구나 가능한 수법 같지만, 쉬운작업은 아닐 것이다. 자유분방한 귀얄의 맛을 내고자 하면 곧 요란스럽게 된다. 작가로서의 능력은 은은하면서도 자유로운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것에서 충분히 증명될 것이다. 담담하게 물건을 만드는 조선의 장인들에게서 이런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싶다. 훌륭한 귀얄 그릇은 알면 알수록 끝없는 깊은 맛을 느끼게 한다. ”일본의 철학가이자 미술평론가였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가 한국의 분청사기 대접을 앞에 두고 했던 말이다. 그는 20세기 초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던 민예(民藝, Mingei) 운동의 창시자였다. 민예란 실용성과 단순성에 중점을 둔 공예품으로 평범한 민중들의 생활공예를 일컫는다. 민예운동은 물질의 시대에 이름난 장인이 화려하게 치장한 장식품보다 이름없는 장인이 만들어도 생활에서 요긴하게 사용하는 생활용구에 건강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철학을 강조한 사회 운동이었다. 민예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고, 민예운동을 시작했던 야나기가 생활공예품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 것은 조선의 도자기를 접하면서였다. 1914년 우연히 선물 받은 조선후기 백자를 보고 아름다움과 기능이 조화를 이룬 예술품으로서의 공예에 눈을 뜨게 되었던 그는 이후 한반도 보통 사람들의 생활에 스며들어 있었던 공예품을 수집하고 관찰하며 1925년에 ‘민예’의 개념을 정리하고 일본의 사회운동으로 발전시켰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인과 함께 숨쉬어 왔던 공예품이 타인의 시각으로 재조명 받은 것이다. 처음에 소개한 야나기의 글은 현재 일본 도쿄 민예관에 소장된 분청사기 귀얄문 대접을 본 소감이었다. ‘귀얄’이란 돼지털이나 말총 등을 한데 묶어 만든 솔을 칭하는 우리말로, 보통 거친 풀비같은 도구를 일컫는다. 귀얄붓을 이용해서 빠른 속도로 흰색 흙물을 장식한 귀얄문 분청사기는 16세기를 전후로 유행했다. 당시는 순백의 백자가 조선왕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조선의 주도적인 도자기로 자리잡기 시작했던 때였기에 거친 느낌의 분청사기는 소수의 상류층이 아닌 다수의 보통 사람을 위한 그릇으로 자리잡아 가는 시기였다. 따라서 분청사기의 제작은 그릇 한 점에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장식으로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고, 숙달된 장인이 익숙한 솜씨로 장식한 귀얄문이 다수 만들어졌다. 덕분에 분청사기 귀얄문 그릇에는 이름 없는 제작자의 경지에 이른 솜씨와 보통 사람들의 실제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건강한 아름다움이 배여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청사기의 매력에 대해 2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선학의 글을 곱씹으며 무심한 듯 놓여진 그릇에 시선을 맞춰본다. “때로는 지지리 못생긴 듯 싶으면서도 바로 보면 비길 곳이 없는 태연하고도 자연스러운 둥근 맛, 그리고 때로는 무지한 듯 하면서도 양식이 은근하게 숨을 쉬고 있는 신선한 매력, 그 속에서 우리는 늘 이 분청사기가 지니는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다. ”
* 이 유물은 2015년 11월 8일(일)까지 개최된 “Splendor and Serenity: Korean Ceramics from the Honolulu Museum of Art” 특별전에서 전시되었습니다.
호놀룰루미술관의 한국도자 특별전이 종료함에 따라 특별전 관련 연재도 마감합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관심가져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주 부터는 한국실 상설관을 비롯, 미술관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호놀룰루미술관 관람 정보>
Honolulu Museum of Art
900 South Beretania Street
808-532-8700
<관람료>
일반 10달러
만 17세 미만 무료 입장
<관람시간>
화요일-토요일 10:00-16:00
일요일 13:00-17:00
* 매주 월요일 휴관
* 매주 화요일 10:00~12:00은 한국어 도슨트 투어 가능
* 무료 관람일 및 휴일 관람시간은 홈페이지 참고
<이미지 정보>
1. Bowl
Korea, Joseon dynasty, late 15th -early 16th century Buncheong ware; stoneware with glaze and white slip Gift of Dr. Jack Paldi, 1985 (5433.1) 분청 귀얄문 발 조선시대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1985년 잭 팔디 박사 기증 (5433.1)
<하와이 한인미술협회 후원>
오 가 영
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
오가영 큐레이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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