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 속 청자 2007년 초여름, 청자와 관련해서 국내 언론에 대서특필된 사건이 한 건 있었다. 이름하여 ‘쭈꾸미가 건져올린 보물’ 사건. 이 사건은 2007년 5월, 태안군 안흥항 근해에서 어로 작업을 하던 어부가 쭈꾸미와 함께 올라온 고려 청자를 신고하면서 시작되었다. 신고지에서 고려시대 난파 선박의 흔적을 확인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본격적인 수중 발굴에 나섰고, 2008년까지 고려시대 선박과 선상생활용품 그리고 23,000여점이 넘는 청자를 인양했다. 한날 한시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엄청난 양의 청자 꾸러미 속에서는 고려시대 목간(木簡) 20여점이 함께 발견되어 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화물표 혹은 운송장에 해당하는 목간에는 당시 화물의 선적지와 도착지, 최종 수령인의 이름, 화물의 종류와 수량, 선적 확인방법 등이 명기되어 침몰당시 사회 전반에 걸친 연구자료를 제공했다. 그 중에는 탐진현(현재의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개경에 있는 관리에게 사기 80점을 보낸다는 내용이 적힌 목간도 포함되어 고려 최대의 청자 생산지 강진에서 바닷길을 통해 개경까지 청자를 운반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2010년 충청남도 태안군 마도 앞바다에서 발굴한 마도 2호선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자료가 공개되었다. 인양된 180여점의 청자 중 매병이 3점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중 2점이 죽찰(竹札)과 함께 인양되었기 때문이다. 죽찰에는 물건을 받는 사람의 소속 및 이름과 함께 ‘꿀[精蜜]을 준(樽)에 담아 올린다’, ‘참기름[眞(眞油)]을 준(樽)에 담아 올린다’는 문구가 적혀있어, 청자 속에 담겨있었던 내용물과 기물의 명칭까지 확인되었다. 즉 매병이라는 기물을 당시에는 준(樽)이라고도 불렀으며, 그 속에 꿀이나 참기름과 같은 귀한 먹거리를 보관하고 운송하는데 사용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매병의 용도는 술을 담는 주기(酒器) 혹은 꽃을 꽂은 화기(花器) 등으로 알려져왔는데, 실제 고려시대에는 그 사용범위가 훨씬 넓었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부피가 크고 무게가 무거운데다가 물리적 충격으로 파손의 우려가 높은 도자기는 예로부터 육로보다는 수로를 통해 운반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질 좋은 청자의 생산지가 전라남도 강진, 전라북도 부안 등 한반도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최고의 소비지였던 수도 개경으로의 원거리 운송에 서해를 이용한 해로가 선택되었다. 하지만 서해의 뱃길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하고 센 물살과 암초로 해난사고의 위험이 높았기 때문에 거친 파도를 넘지 못한 고려 선박들이 더러 침몰하기도 했는데, 이 때 바다밑 뻘 속에 묻혔던 침몰선들이 800년전 사람들의 생생했던 삶을 보여주는 타임캡슐이 된 것이다.
드넓은 태평양 한 가운데 호놀룰루미술관에서 고려시대 <청자상감 연지문 매병>을 마주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 옛날 청자가마에서 제작된 후 거친 서해의 파도를 넘어 운반되었을 이 청자에는 술을 담았을까 꿀을 담았을까. 운 좋게 해난사고없이 전해졌다가 어떻게 다시 태평양을 건너게 되었을까? 섬세한 필치로 학이 노니는 연못 풍경을 새긴 매병. 복잡다난한 인간사가 쌓은 시간의 더께 아래 평화로운 이상세계가 펼쳐진 것 같다. *이 유물은 2015년 8월 13일부터 11월 8일까지 개최하는 “Splendor and Serenity: Korean Ceramics from the Honolulu Museum of Art” 특별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호놀룰루미술관 관람 정보>
Honolulu Museum of Art
900 South Beretania Street
808-532-8700
www.honolulumuseum.org
관람료
일반 10달러
만 17세 미만 무료 입장
<관람시간>
화요일-토요일 10:00-16:00
일요일 13:00-17:00
* 매주 월요일 휴관
* 매주 화요일 10:00~12:00은 한국어 도슨트 투어 가능
* 무료 관람일 및 휴일 관람시간은 홈페이지 참고
<이미지 정보>
1. Plum Blossom Vase (Maebyong) with Crane and Lotus DesignKorea, Goryeo dynasty, late 12th centuryStoneware with celadon glazeGift of Anna Rice Cooke, 1927 (110)청자상감 연지문 매병고려시대 12세기 후반 1927년 앤 라이스 쿡 기증 (110)
<하와이 한인미술협회 후원>
오 가 영
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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