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의 눈에 비친 백자 제작소앵자산(鶯子山) 북쪽 우천(牛川) 동쪽에 남한산성이 눈 안에 있고,강 구름은 밤마다 이어 비를 만들고 산골 나무에는 긴 바람이 열흘이나 부네. 요인(窯人)들은 산모롱이에 사는데 오랜 부역에 괴롭다네.
스스로 말하기를 지난 해 영남에 가서 진주 백토를 실어 왔다네.
선천토 색은 눈과 같아서 어기(御器) 번성(燔成)에 제일이지,감사가 글을 올려 노역은 덜었지만 진상품은 해마다 퇴물(退物)이 많아지네. 수비정토(水飛精土)한 흙은 솜보다 부드럽고 발로 물레 돌리니 저절로 돌고,잠깐 사이 천 여 개 빚어내니 우(盂), 완(梡), 병(甁), 앵(櫻) 하나 같이 둥그네. 진상할 기명은 삼십 여 종이요 본원에 인정으로 바칠 양은 사백 바리인데, 정교하고 거칠거나 색과 모양을 말하지 말게 바로 돈이 없는 게 죄일세. 회청(回靑) 한 글자를 은과 같이 아껴서 갖가지 종류를 그려도 색이 고른데, 지난해 대내(大內)에 용준(龍樽)을 바치니 내사(內司)에서 공인에게 면포를 상으로 주었다네. 칠십 노인의 성은 박씨인데 그 안에서 선수장(善手匠)으로 불린다네, 두꺼비 연적은 가장 기이한 것이며 팔면당호(八面唐壺)는 정말 좋은 모양이네.
-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 1677-1724)의 문집 두타초(頭陀草) 중에서 조선 후기의 문인 이하곤이 분원(分院)에 들러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글이다. 중국이나 고려, 조선의 회화에 대해 안목있는 비평을 남기기도 했던 저자의 경험을 따라 18세기 분원의 모습을 스케치 해 본다.
경기도 광주시 우천 동쪽,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산모퉁이에 사는데 오랜 부역에 힘겹다. 좋은 백자의 재료를 찾아 전국을 다니고, 경상남도 진주, 평안북도 선천 등에서 백토를 구해 임금이 쓸 그릇을 빚는다. 나라에 바친 그릇은 해마다 돌려보내는 숫자가 늘어 일이 줄지를 않는다. 사발, 병, 항아리 하나같이 둥근 형태가 눈 앞에 줄을 섰다. 왕실에 바쳐야 할 그릇은 30여종, 인정으로 만들어야 할 그릇은 400여개 인데, 그 수를 맞추기가 바빠 품질과 디자인을 따질수는 없다.
산화 코발트 안료로 청화 문양을 장식한 백자들은 푸른 안료의 색이 고운데, 특히 지난 해 왕실에 청화로 용을 그린 항아리를 바쳤더니 면포를 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나이 칠십이 넘은 박씨성을 가진 도공이 제일 솜씨가 뛰어나서 우두머리로 불린다. 이 곳에서 본 도자기 중 두꺼비 모양의 연적이 가장 기이하며 팔각 병은 정말 좋은 모양이다. 상세하게 보고들은 경험을 남긴 문인의 글은 300여년 전 분원의 모습을 전해준다.
이하곤이 남긴 한 편의 기록은 박물관 진열장에서 만나는 유물 한 점에도 짙은 사람내음이 배여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담헌이 마지막으로 칭찬해 마지않았던 팔각 병. 어쩌면 그가 보았을 병과 유사한 유물 한 점이 호놀룰루미술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눈부시게 하얀 빛깔이 인상적인 <백자 팔각병>이다.
* 이 유물은 호놀룰루미술관 특별전 <화려함과 단아함,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한국 도자 명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호놀룰루미술관 관람 정보>
Honolulu Museum of Art
900 South Beretania Street
808-532-8700
www.honolulumuseum.org
관람료
일반 10달러
만 17세 미만 무료 입장
<관람시간>
화요일-토요일 10:00-16:00
일요일 13:00-17:00
* 매주 월요일 휴관
* 매주 화요일 10:00~12:00은 한국어 도슨트 투어 가능
* 무료 관람일 및 휴일 관람시간은 홈페이지 참고
<이미지 정보>
1. Eight-faceted BottleKorea, Joseon dynasty, late 18th century Porcelain Purchase, 1935 (4038) 백자 팔각병 조선시대 18세기 후반1935년 구입 (4038)
<하와이 한인미술협회 후원>
오 가 영
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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