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흥미진진한 드라마의 구성 요소는 예측불허의 전개와 반전이다. 그렇게 본다면 1일 치러진 아이오와 코커스는 흥행 요소를 빠짐없이 갖춘 대박 드라마였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 코커스 결과는 힐러리 클리턴 49.9%, 버니 샌더스 49.6%로 집계됐다. 어떤 인위적인 노력으로도 만들어 내기 힘든 극적인 초박빙의 접전이었다. 공식적인 승자는 힐러리로 선언됐지만 실질적으로는 무승부였다.
공화당도 마찬가지였다. 당초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의 우세가 점쳐졌지만 정작 승리를 거머쥔 것은 2위로 전망되던 테드 크루즈였다. 이날 기록적인 숫자의 공화당원들이 코커스장으로 쏟아져 나오자 정치평론가들은 트럼프에 유리한 현상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이들의 예측은 빗나갔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여론조사 기관들과 정치 분석가들을 머쓱하게 만드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아이오와는 아주 작은 주이다. 전체 인구라고 해 봐야 대도시 하나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아이오와 코커스에는 뜨거운 관심이 집중된다. 대선 풍향계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코커스 결과가 아직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수많은 유권자들의 표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는 확신이 없을 경우 대세를 따라가려고 하는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번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서 줄곧 앞서온 힐러리에게는 지난 2008년 아이오와에서 오바마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결국 후보 자리를 내줬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1일 코커스에서 신승을 거두자 힐러리는 안도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녀는 2008년의 악몽이 재현될까 노심초사 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대세론에 다시 불을 지피기에는 다소 부족한 결과였다. 반면 샌더스에게는 이번 코커스가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기회가 됐다.
경선 초기만 해도 샌더스는 들러리 정도로 치부됐다. 그의 급진적 공약들은 북유럽에서나 가능하지 미국에서는 현실성이 없는 이상론으로 폄하됐다. 후보 선출 가능성과 대선 당선 가능성 모두 제로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 절하됐다. 하지만 그는 일관된 메시지를 고집했다. “너무 과격한 것 아니냐”는 언론의 질문에는 “월마트 소유가문의 재산이 가난한 미국인 1억3,000만명의 재산보다 크다는 사실이 더 과격하다”고 맞받아 쳤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은 분노할 자격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민주당의 코커스 결과는 너무나도 절묘해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일단 힐러리는 ‘선방’을 했고 샌더스는 ‘선전’했다고 불 수 있다. 아이오와에서 샌더스가 받은 지지가 반짝 돌풍인지, 아니면 유권자들의 분노가 서서히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일단 샌더스의 텃밭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지나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거쳐봐야 조금씩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판세가 혼란스럽기는 공화당이 더 심하다. 트럼프의 지지율에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면서 공화당 경선은 한층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칫 진흙탕 싸움이 될 수도 있다. 현재의 구도와 후보들 간에 형성된 적대감으로 볼 때 공화당 경선은 상당한 후유증과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 확실하다.
올 대선드라마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첫 번째 뚜껑을 열어본 결과 뚜렷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오히려 모든 것이 안갯속으로 더 숨어버린 느낌이다. “2016년은 섣부른 예상으로 망신을 당하기 십상인 해”라는 한 뉴스 앵커의 멘트는 요동치는 판세를 잘 집약해 주고 있다.
뻔한 대선후보들이 나와 느슨한 절차로 경선을 치러 뻔한 결말에 도달하는 한국정치와 엎치락뒤치락하는 미국 풀뿌리 대선전의 역동성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대선 드라마는 이제 막 1회가 끝났을 뿐이다. 11월까지 유권자들이 어떤 드라마를 써 내려가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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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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