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남미, 인도까지 국제적 추적에도 발견 못해
▶ 작위 계승·재산 상속 위해 아들이 법적 사망 신청
지난 3일, 런던 법원을 나서고 있는 아들 조지 찰스 빙엄.
제7대 루칸 백작, 리처드 존 빙엄. 1963년 사진이다.
1974년 영국 런던의 고급 주택가 벨그라이비아, 유서 깊은 귀족 가문, 루칸 백작의 저택 지하실에서 백작 자녀들의 젊은 보모가 둔기에 맞아 무참하게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사건 직후 루칸 백작이 종적을 감추었다. 잘생긴데다 재능도 많고 마티니와 모터보트와 애스턴 마틴 자동차를 좋아했던 한량기질도 다분해 인기가 높았던 귀족이었다. 이듬해인 1975년 제7대 루칸 백작, 리처드 존 빙엄은 보모피살 사건의‘살인자’로 공표되었다. 그러나 멀리 호주, 콜롬비아, 인도, 파라과이, 미국과 뉴질랜드 등 세계 곳곳으로 확대된 국제적 추적과 끊임없는 음모설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쪽같이 사라진 채 발견되지 않았다.
1999년 한 영국 판사가 루칸 백작의 법적 사망을 선고, 일부 토지와 유산문제 해결을 허용한 바 있으나 그 선고는 이 이슈를 완전히 종결짓는 판결은 아니었다. 그래서 2014년 발효된 법에 의해 백작의 아들인 조지 찰스 빙엄이 아버지의 작위 계승으로 제8대 루칸 백작이 되기 위해 법원에 정식으로 사망증명서 발급을 요청한 것이다.
이번 주 3일 런던의 고등법원 새라 애스플린 판사는 아들 빙엄의 청원을 받아들여 사망증명 발급 판결을 내렸다. 영국 미디어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이번 법적 절차는 그처럼 오래 끌어오며 악명 높았던 사건의 종결치고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애스플린 판사의 결정은 보모 샌드라 리벳의 아들인 닐 베리먼이 빙엄의 청원에 대한 반대를 취하한 뒤 내려졌다. 아기 때 입양되어야 했던 베리먼은 양모가 사망한 후에야 자신의 생모인 리벳이 피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언젠가 루칸 백작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될 가능성을 이유로 사망진단서 발급을 반대해 왔다. 만약 살아있다면 루칸 백작의 현재 나이는 81세다.
루칸 백작의 실종은 당시의 영국을 사로잡았었다. 사건이 발생했던 1970년 대 초는 오일쇼크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경기 침체와 재정적자로 영국민의 불안감이 증가하던 때였다. 이 같은 불안한 변화의 시대에 상류사회의 끔찍한 범죄와 법망을 피해 감쪽같이 종적을 감춘 귀족의 실종은 전 국민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루칸 백작에 대한 수색은 1974년 11월7일 사건 당일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별거 중인 아내 베로니카 던컨이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한 술집으로 뛰어 들어 와 “그가 집안에 있어요! 그가 보모를 살해했어요!”라고 소리를 지른 후 부터다.
그들 부부는 1972년부터 별거해 왔고 루칸 백작은 저택 인근의 한 주택으로 옮겨가 살았다. 당시 그는 도박 빚에 시달렸으며 3명 자녀에 대한 양육권 문제로 아내와 싸우고 있었다.
경찰은 집안 지하실에서 당시 29세였던 보모의 시체를 발견했다. 쇠 파이프에 맞아 사망했으며 우편물 자루 안에 담겨 있었다. 살해 원인은 확실치 않은데 루칸 백작이 보모를 자신의 아내로 오인했다는 설도 있었다.
얼마 후 루칸 백작이 친구에게서 빌린 포드 코르세이어 자동차가 런던 남동쪽 뉴헤이븐에서 발견되었다. 피에 흠뻑 젖은 채 버려져 있었다. 1975년 배심원단은 그를 이 사건의 ‘살인자’로 공표했다.
지난해 가을 희생자의 아들인 베리먼은 법적 사망선고를 반대하며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 ‘더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반문했다 : “도대체 왜 루칸 백작의 아들은 살해추정범과 연관된 작위를 이어받기 원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몇 달 차이 동년배인 베리먼과 빙엄은 합의에 도달한 듯 보인다. 3일 법원 밖에서 각각 기자들과 만난 두 사람은 화해적인 언급을 했다.
베리먼은 “내 어머니 샌드라 리벳 살해는 매우 복합적인 사건이었다”면서 “난 그와 상당 부분 공통점을 느낀다. 그들에 반대하는 가족들과 잘 상의하겠다. 이 문제를 종결짓고 그 자신의 삶을 살기 원하는 그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베리먼의 고통에 연민을 표시한 빙엄은 “아버지의 운명은 미스터리” 라면서 “당시 8살 소년이었던 내 개인의 생각으로는 아버진 불행히도 그 당시에 사망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죄건 아니건 간에 당시 아버지는 자신의 삶이 끝난 것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끊임없이 법정을 전전하고 미디어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삶과 직업과 양육권이 모두 파괴당할 것을 알고 스스로 생명을 끊지 않았을까…그러나 난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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