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낮이 긴 여름철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일거리를 찾지 못해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대신 무엇인가를 글로 적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중략) 붓 가는 대로 뒤죽박죽 썼기 때문에 짜임새나 순서가 전혀 없어 심심풀이로 보기에도 한참 부족하다.”
<을축년(1805) 동짓날에 쓰다>
저자 본인조차 ‘잗다랗고 재미없는 이야기’, ‘뒷날 병풍을 꾸미거나 벽을 발라도 아까울 것 없는 것’이라 깎아내린 이 책을 누군가(위당 정인보)는 이렇게 평했다. “범연히 끌어들인 소재가 없고 실속 없이 구색만 갖춘 주제가 없다.”
조선의 실학자 현동(玄同) 정동유(1744~1808). 4명의 정승을 배출한 소론계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난 그는 조선판 ‘제너럴리스트’이자 그 모든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였다. 지리·건축·역법·세시풍속·외국·역사·훈민정음·학술·노비… 현동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문제부터 전문 분야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의 정보와 지식을 한데 모아 독창적인 시선으로 해석했다.
조선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룬 책 ‘주영편’은 오늘날로 치면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겠다.
주영편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202개 주제에 대한 폭넓고 깊은 지식이 담겼다. 조선의 혼인 풍속·화장 제도·건축 규모, 청나라의 태자 책봉 등 다채로운 주제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를 전달하는가 하면 그동안 알고 있었던 바와 다른 새로운 발견을 더해 넣기도 하고 조선과 원나라의 노비제도를 비교한 뒤 ‘노비제도 혁파’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책 반 페이지, 길게는 두 세 장 정도의 짧은 글은 저마다 정보와 자기 의견을 담은 ‘소 칼럼’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방대한 정보를 터치 몇 번, 자판기 입력 몇 번으로 얻을 수 있는 세상. 현대인에게는 정보의 양이나 깊이에 있어 아쉬움이 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 한 개인이 이토록 많은 주제에 대해 뚜렷한 혜안을 갖고 글을 쓸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주제별로 양이 길지 않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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