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김영현(왼쪽), 박상연 16-03-22
"모든 인물들에게 다 애착이 간다. 특별히 꼽으라면 아무래도 백성이다. 방지와 무휼, 분이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이방원, 정도전 못지않게 우리에게 중요했다. 이들이 어려운 세상을 관통해 살아남은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SBS TV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가 22일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마지막 50회 방송을 앞두고 극작가 김영현(50)·박상연(44)씨가 극중 캐릭터에 애정을 표했다.
변요한이 연기한 방지는 정도전(김명민)의 호위무사로 가난한 자작농의 아들이다. 방지의 여동생 분이(신세경)는 민초들을 이끌면서 이방원(유아인)의 조력자이자 마음 속 연인으로 활약했다. 무휼(윤균상)은 이방원의 호위무사로 훗날 세종대왕의 최측근인 내금위장에 오르는 조선 제일의 검객이다. 셋 다 가상의 인물이다.
두 작가는 "분이는 백성을 살려내기 위해 끝까지 살아 견디는 인물이고, 방지는 한 맺힌 인물"이라며 "무휼은 그들보다 다소 편하게 산 것처럼 보이나 보통 백성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존재한다.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과 함께 이들을 제대로 그려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무휼은 전작 '뿌리깊은 나무'에도 등장한다. 이방원이 대업을 이루기까지 늘 함께 하다 정작 대업을 이룬 뒤에는 낙향한다. 왜 이방원, 세조는 떠났고 그 아들인 세종은 모셨을까.
"무휼은 가장 보통사람에 가깝다. 출세는 하고 싶으나 나쁜 짓은 하기 싫고, 보람을 느끼며 살고 싶어 한다. 초기에 이방원에게 매료됐으나 이방원이 사람을 많이 죽이면서 무휼은 힘들었을 것이다. 보통사람이 따르기에는 이방원이 너무 큰 존재, 대의를 품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방원이 철혈군주라면 세종은 인문학적 군주다. "대의를 품은 것은 둘 다 같지만 세종은 보통사람의 따뜻함을 두루 갖췄기에 무휼이 군주로서 섬기기에 훨씬 타당했다고 본다."

작가 김영현(왼쪽), 박상연 16-03-22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살려준 조연으로는 극 초반 화제를 모은 길태미(박현권)를 지목했다. 길태미는 고려 최고의 실력자 이인겸(최종원)의 오랜 심복이자 무술고수다.
"4회 전까지 길태미가 화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실력파답게 훨씬 맛깔스럽게 연기해줬다"고 평했다. "무술고수 척사광(한예리)에 의해 죽은 이방원의 심복 조영규(민성욱)도 방원과 무휼 사이에서 감정을 잘 풀어줬다."
'육룡이 나르샤'은 이방원과 정도전, 정몽주(김의성) 등 사극에서 자주 다뤄진 인물을 그렸으나 기존과 다른 해석으로 주목받았다. 이방원은 500년 조선조 국가 운영의 밑그림을 완성한 군왕이다. 하지만 왕위에 오르는 과정이나 왕위에 오른 뒤 계속된 피의 숙청을 단행, 부정적 이미지가 크다.
"이방원을 그리면서 그가 행한 처참한 일을 오히려 더 보탰다. 예를 들면 두문동 방화사건에서 이복동생 방석을 직접 죽인 역사적 기록은 없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이방원을 응원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방원을 미워하지 말자'에서 출발한 것은 맞지만 미화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대의를 위해 작은 것은 모두 버리는, 권력 의지의 크기가 남다른 인물로 해석했다."
정도전과 정몽준에 대해서는 "정신세계가 사대부인 사람들"이라고 봤다. "정도전의 입장은 시대 상황을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정치를 위해 모략을 인정하나 끊임없이 갈등한다. 우유부단함이라고 할까, 무소불위의 권력자였음에도 이방원의 위험도를 감지하면서도 그 싹을 잘라내지 못했다."
그 시대 사대부끼리 투쟁은 대단했다. "정도전과 정몽주가 서로 공격할 때, 서로 상대방의 온갖 추한 사건들을 들춰냈다. 대신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죽이지는 않았다. 탄핵을 하는 등 제도권 안에서 싸웠다. 이들 모습이 룰을 뛰어 넘는 이방원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시청자들에게는 마음의 폭이 좁은 사람들로 보였을 수 있겠다."

’육룡이 나르샤’ 출연·제작진 16-03-22
사극은 늘 고증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박 작가는 김 작가가 고증을 많이 지키는 편인 반면 자신을 그렇지 않다고 비교했다. "난 판타지 작가라고 생각한다. 시대정신을 위배하고 싶지 않은 큰 틀 안에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한다."
김 작가는 "사료를 많이 보는 편"이라고 인정했다. "현대적 재미를 살리고, 현대와 소통하고자 자료를 보는 것이다. 지금 시대와 무엇이 같기에 이것을 하게 되는가를 알기 위해서다."
차기작은 정해진 것이 없다. "한다면 용비어천가의 1장이 '육룡이 나르샤', 2장이 '뿌리깊은 나무'였으니 3장은 '샘이 깊은 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즉, 계유정난을 다룰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계유정난은 1453년, 조선의 제7대 왕에 오르는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다. 단종 1년, 수양대군은 단종의 충신인 좌의정 김종서와 그의 아들을 죽였다. 영화 '관상'이 다룬 역사적 사건이 바로 계유정난이다.
"비극적 이야기이고, 선한 인물이 없기에 악인들이 벌이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세조와 한명회. 세조는 세종이 아끼는 아들이었으나 왕이 된 뒤 변질돼 세종 때의 학맥을 다 끊었다. 태종과 달리 공신한테 휘둘린 왕이다. 태종 이방원은 그에 비하면 대단하다. 태종은 (아들) 세종을 위해 가신을 가차 없이 쳐낸다. 한명회는 밀본의 변절자이다."
고민은 있다.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선인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시청자는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제3자의 입장 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드라마가 성공한 예가 없기에, 한다면 모험이 될 것이다."
'육룡이 나르샤'도 모험이었다.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로서 한국 드라마가 해 본 적 없는 시도였다.

신세경(가운데)와 극작가들 16-03-22
"작가로서 로망이고 모험이었다. 손발 묶여 링에 올라간 느낌이었다.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 창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상상력으로 채워나갔다. 그러나 '육룡이 나르샤'의 역사는 위화도 회군, 조민수, 최영 등 자료가 촘촘하게 남아있어 상상력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한 마디로 규칙이 복잡한 게임이었다."
장점도 있었다.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밀본이 싹이 터야 하고, 무휼은 이도의 호위무사가 돼야 하고, 정도전은 어느 지점에서 죽음을 맞고, 또 분이는 반촌으로 돌아가고, 도담댁이 나타나고….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랄까?"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권력욕 측면에서 '육룡이 나르샤'와 현대 정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두 작가는 "의지는 없고 권력욕만 남았다"고 답했다.
"이방원과 정도전은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의지가 있는 인물'이다. 백성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내가 이뤄야 한다는 의지가 뚜렷했다. 지금은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의지는 부족한 것 같다. 권력을 잡고 싶은 의지만 있는 것 같다."
반면 방지나 분이, 무휼처럼 민초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드라마 속이나 밖이나 먹고 사는 게 일이다.
<뉴시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