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기 들어 전 세계 스포츠계에서 일어난 가장 놀라운 반전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레스터시티의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이다. 늘 2부 강등을 걱정해야 했던 만년 하위팀 레스터시티가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2일 기적 같은 우승을 확정지었다. 레스터시티가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로 평가받는 EPL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한 축구전문가는 단 한명도 없었다.
스포츠 승부예측에서 전문가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정확성을 보이는 것은 도박업체들이다. 영국 도박업체들은 레스터시티의 우승가능성을 5,000대1로 봤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말과 같다.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은 이것을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직까지 살아 있을 확률과 같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레스터시티의 우승이 얼마나 극적이고 놀라운 결과였는지 축구 스토리는 잘 다루지 않는 뉴욕타임스까지 지난 주말 이 팀에 관한 장문의 기사를 실었을 정도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초대박 드라마다.
만년 꼴찌 레스터시티의 위대한 여정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그저 운과 우연의 덕이었을까. 그 답의 실마리는 EPL의 운영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EPL은 지난 1992년 재정비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그러면서 획기적인 수익분배 방식을 택했다. 중계료 가운데 절반을 모든 팀들에 똑같이 나눠주기로 한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성적과 방송 노출횟수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EPL은 세계최고 리그답게 천문학적 액수의 TV 중계료를 벌어들인다. 약체 팀이라도 일단 EPL에 속해 있으면 돈 걱정 없이 좋은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는 여력을 어느 정도 보장받는 것이다. 이런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시장도 작고 존재감도 없었던 레스터시티가 우승이라는 동화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빅 클럽들의 반발이 심했다. 그럼에도 EPL이 이를 밀어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팀들 간 전력 차이가 너무 심하면 재미가 없어지고 결국 리그 전체가 공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위팀이 언제든 상위팀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전력이 균형을 이룰 때 긴장감과 활력이 유지되고, 그래야 리그 전체의 인기와 수입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논리다.
EPL의 운영방식은 미국 최고 인기스포츠인 NFL과 너무도 흡사하다. NFL이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된 데는 ‘공존의 철학’이 원동력이 됐다. 연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중계료를 32개 팀에 똑같이 나눠주는 것은 물론 심지어 입장수입까지 방문팀에 일부 분배해 줄 정도다. 그리고 신인선수 드래프트는 철저히 성적이 나쁜 순서로 우선권이 주어진다.
그 이유 또한 EPL과 같다. 팬들의 흥미와 관심을 집중시키려면 승부의 불확실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 경기는 재미를 줄 수 없다. 그런 경기들이 계속되다 보면 리그는 죽을 수밖에 없다. ‘전력의 양극화’는 스포츠 리그에 가장 치명적인 요소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EPL과 NFL은 수입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성공하는 리그들은 상생이 곧 경쟁력이자 성장의 동력임을 증명해 준다. 모든 성공의 법칙에는 인간사회를 관통하는 보편성이 있다. 인권 감수성과 복지, 구성원들의 행복도 등에서 최고 수준인 국가들에서도 공생과 배려의 정신이 널리 퍼져있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삶의 형태와 미래가 결정되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이런 사회에서 전체의 성장을 위한 건강한 긴장과 경쟁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적대감과 증오만 자란다.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취약계층 배려’ 같은 아젠다를 단순한 나눔이 아닌 성장을 위한 담론으로 봐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양극화는 리그의 미래에 치명적”이라는 최고 리그들의 철학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은 스포츠에 국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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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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