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킨 나라 발전 고향 일 처럼 기뻐”
■ 미군 참전Seymour Podber(85): 매우 감사한 전시가 아닐 수 없다. 전쟁이 지난 한참 후 나에게 한국전쟁에 참전했었으니 한국에 방문해 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고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 이유는 전쟁당시 중공군이 내려오고 수 많은 전우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이 생생했고, 강원도 철원 부근에서 근무하며 손, 발이 으스러질만큼 추웠던 기억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그 당시와 비교했을 때 굉장한 경제성장 발전을 이뤘고, 내가 지킨 나라의 잘됨을 보는 것은 제2의 고향의 일처럼 기쁘다.
“조국에 목숨 바친 젊은이들 기억해주길”
■ 한국군 참전 심기영(85): 젊은이들을 바라보면 그저 부러울 뿐이다.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던 당시 한국전쟁이 터지고, 카투사로서 미군에 배치됐었다. 미군의 경우 3만 6천7백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낙동강부근으로 배치됐을 때 1년 후 절반의 군인들만 남고 수 많은 용사들이 죽었다. 그 참혹한 기억을 단 하루도 잊을 수 없었다. 1년에 한번씩 하는 행사이지만 당시의 상황을 상기시켜주고 한국전쟁이 헛되지 않도록 의미있는 한국전쟁 자료전시회를 열어주어 고맙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 많은 젊은이들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전우들 헌신 전시 통해 전해졌으면”
■ 한국군 참전 이원한(85):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때 대학진학을 고민해야 할 나이에 참혹한 전쟁터로 변한 우리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애국심 하나로 전쟁에 뛰어들게 됐다. 고성부근에서 대위 포대장으로 한국전쟁 3년 동안 근무하고 4년 더 군대 생활을 했다. 잊혀진 전쟁이라 부르지만 나에겐 잊혀진 전쟁이 아닐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한다. 학창시절의 나의 꿈과 희망은 포기했어야 했지만 국가를 보호하고, 젊음을 대신해 목숨걸고 나라를 지킨 수 많은 전우들의 헌신을 전시를 통해서나마 전해지길 바라며, 하루 빨리 평화통일을 이루는 그 순간이 오길 바래본다.
“66년전 배운 안녕이란 말 잊지 않아”
■ 미군 참전Jerry Field(84):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양양지역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었는데 기억나는 한국의 모습은 혹독한 추위, 김치, 산 이다. 당시 동네주민에게 배운 ‘안녕’이라는 말은 66년간 잊지않고 있다. 1년전 한국정부가 참전용사 배지와 60주년당시 기념동전을 수여해줬다. 배지는 항상 나의 왼쪽 가슴에, 기념동전은 내 주머니에 넣어두고 다닌다. ‘자유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 있다. 살기좋은 지금은 66년전 모든 것을 바쳐 나라를 지킨 참전용사들이 있음이다. 그런 우리 세대를 잊지않고 전시회를 열어 기억해 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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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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