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 가사에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 처참했던 민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6.25는 어느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는 것 같다. 아니 잊어버리려고 한다. 더욱이 남북 평화가 운위되는 분위기 속에서는 6.25를 말하고 기억하는 것 그 자체가 냉전주의요 수구며, 시대의 조류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국가와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일리가 있는 이야기같이 보일지는 몰라도 과연 그런 것인가? 지난 불행했던 과거를 오늘에 끄집어내어 그것을 기억하고, 분노하고, 억울해 하고 원망하자는 말이 아니다.
비록 역사 속에 묻혀버린 과거사이고 또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이해한다고 해도, 진정 우리 민족의 영원한 평화와 화해, 그리고 다시는 그런 비극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없기를 염원하는 의미에서도 결코 6.25를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가 토인비는 말하기를 이 세상 그 어느 민족이고 전쟁의 불행을 경험하지 않은 나라는 없고, 또 그 어느 한 나라도 패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지만 그 험난한 역사 속에서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아 세계 속에 우뚝 선 민족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유대민족이라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물론 그 모든 바탕에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겠지만 그들의 민족혼이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선민사상과, 조상들이 겪은 불행을 결단코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없다는 민족애, 그리고 투철한 국가관이 그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끼쳐진 그 어떤 만행일지라도 용서는 하되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조상들이 겪은 혹독한 불행을 오히려 자랑처럼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그 불행을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오늘의 교훈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은 유리하는 백성이었습니다.”“우리의 조상은 애굽 땅에서 종노릇 했습니다.”우리들이라면 쉽게 할 수 없는 말들을 그들은 초등학교 교과서 책머리에 기록하고, 심지어 민족박물관을 만들어 조상들이 겪은 참극과 홀로코스트 가스실로 끌려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음으로써 그곳을 찾는 후손들이 부끄러운 조상들의 불행을 보고 다시는 그런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는 어떤가? 온 천지가 다 아는 역사의 실체를 남에게 보여주기 창피한 과거라는 이유로 숨기려 하고,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적 싸움과 갈등으로 자신들의 집단적 이기를 도모하고, 선량한 국민의 이름을 마음대로 도용해서 마치 자기들만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고 오직 자기들만이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선도하는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숨기려 한다.
손바닥으로는 결코 하늘을 가릴 수 없다. 역사의 실체는 그 어떤 변명이나 술수적 포장으로 감추어지거나 부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스러운 우리 후손들의 원대한 꿈의 성취를 위해 민족의 양심으로 정직해야 한다. 비록 아픔과 부끄러움과 고통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고 가르쳐야 한다. 이것만이 당당한 조상으로서의 자리 매김을 하는 것이리라.
애국은 논리도, 개념도 아니다. 남과 북으로 잘려진 이 땅 위에서 진보니 보수니 하면서, 동서의 분열을 조장해 자신들의 벼슬을 지키고 치부하는 그런 패거리들이 말하는 괘씸한 입술놀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과 나라가 이념의 관철을 위한 수단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의 정서적 약점과 말초를 교묘히 이용하고 자극해 만행의 역사를 은폐하고 정당화 시키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역사를 드러내는 일에는 어떤 술수나 위선도 용납될 수 없다.
애국은 살리시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신실한 양심을 열어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며, 우리 민족의 간절했던 비탄의 목메임을 선한 양심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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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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