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영광스런 고립’을 선택하며 유럽연합을 탈퇴키로 결정한 후 충격파가 만만치 않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물론 영국 내 갈등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우스운 것은 탈퇴에 표를 던졌던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잔류에 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후회하는 유권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쪽으로 결론 났으니 환호해야 할 텐데 오히려 당황하고 있다니 코미디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브렉시트에 결정적 역할을 한 유권자들은 노령자들과 저소득층이었다. 영광스러웠던 과거에 대한 향수와 고단한 현실에 대한 좌절감이 이들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끌었다.
잔류파들은 아주 구체적인 수치로 영국이 유럽연합에 남아야 할 이유를 제시했다. 반면 탈퇴파들은 ‘독립’이니 ‘주권’이니 하는 대단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어휘들로 유권자들에 접근했다. 결과적으로 객관적 수치보다 선동적 구호가 더 먹혔다. 이번 브렉시트는 대중의 마음을 얻으려 할 때 이성과 논리보다 감정적 접근이 훨씬 더 효과적임을 실증해 준 케이스였다.
반세기 넘게 진행돼 온 세계화는 개방과 자유무역으로 상징된다. 세계화는 불가피한 추세지만 그 이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유무역은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패자들에 대한 배려가 점차 사라지면서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화됐다. 세계화에 대한 반감과 피로감이 높아진 것은 당연하다. 영국 역시 그랬다.
여기에 테러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불만과 분노에 두려움까지 뒤섞이면서 폭발성이 배가된다. 캐머런 총리가 2년 전 국민투표를 제안했던 것은 유럽연합 문제를 잔류 쪽으로 완전 매듭짓자는 계산에서였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해지고 유럽이 잇달아 테러의 표적이 되면서 영국인들의 정서가 확 바뀌어 버렸다. 이걸 예상하지 못했다.
극우에게 분노와 두려움이라는 부정적 정서는 더 할 나위없는 정치적 자양분이 된다. 이들은 이런 정서를 최대한 자극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같은 극우의 전략은 과학적으로 상당한 타당성이 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보수적인 사람일수록 두려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에서 젊은 남녀 90명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한 후 뇌 구조를 MRI로 측정했다. 그랬더니 보수성향 학생들은 공포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 오른쪽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두꺼웠다. 이 같은 결과는 왜 극우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극하려 하는지, 그리고 왜 이런 시도가 잘 먹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번에 브렉시트를 주도한 세력 역시 그랬다.
정말 우려되는 것은 이런 현상이 영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화에 대한 반감으로 형성된 분노와 두려움이 역설적으로 세계화되고 있는 것이다.
1차 대전 후 공산주의 득세에 따른 두려움과 사회불안 속에서 이성은 질식당했다. 그런 가운데 파시즘이 독버섯처럼 자랐다. 현재의 극우화 추세와 고립주의 확산을 당시와 비교하긴 이르지만 반(反)이성 세력을 저지하지 못할 경우 암흑의 역사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무슨 결정을 하거나 선택을 할 때는 냉정해야 한다. 분노와 두려움 같은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힌 채 내린 결정은 꼭 후회를 불러오게 돼 있다. 잘못 산 물건이야 물리거나 환불받으면 그만이지만 개인의 미래와 국가의 명운이 걸린 결정은 그럴 수 없으니 문제다.
미국인들도 오는 11월 브렉시트 못지않게 미국의 미래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선택을 하게 된다. 합리적 판단을 하려면, 편도체 오른쪽을 집요하게 자극하려 드는 정치 공세에 말려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 저질러 놓고 나서 후회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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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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