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외면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겉모습만 볼게 아니라 마음씨를 봐야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굴에 책임을 지라느니, 여기조금 저기조금 손 좀 보면 되겠다느니...쉽게 말한다.
나만 해도 언젠가 아이가 좀 통통한 여자아이가 좋다고 했을 때, “왜? 쟤는 뚱뚱하잖아...” 한 적이 있다. 그때 아이의 대답은 “엄마가 겉을 보지 말고 안을 보라고 했잖아!”였다. 얼굴이 화끈거려 할 말이 없었다.
동네에 있는 알아주는 중·고등학교에 아이가 합격했다. 역시 아시안들이 공부를 잘해, 뿌듯해하면서도 학교에서 보이는 아시안 일색에 이 학교는 다른 인종이 어쩜 이리도 없니? 실망한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사람(여기서는 아시안이 아닌 인종)없는, 아시안이 90%인 학교에 다니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아시안이 많아야 성적이 좋은 건 알지만…” 이라는 스스로 모순적인 생각에 빠져든다.
타운하우스에 살다가 싱글홈으로 이사온 지 몇 년. 양 옆으로 이웃과 벽을 함께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밤중에도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아이가 피아노를 치거나 트럼펫을 불어도 상관없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앞마당에 잔디가 죽어가고 뒷마당의 펜스를 고쳐야하는데 HOA가 알아서 해주는 게 아니라 직접 이웃과 대화를 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에 귀찮다. 지붕이 문제라고 직접 올라가 지붕타일을 고치는 남편에게 “그러다 떨어져 다치면 어쩌려고!” 말하는 내 마음속에 “아…싱글홈에 살면서 타운홈같은 편리함은 없나...”라는 생각이 움튼다.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한국 갈 때마다 겪었던 혹은 느꼈던 수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백화점이고 지하철이고 물밀듯 밀려오는 사람들을 견딜 수 있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살이 쪘네 빠졌네, 옷 좀 사야겠네,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잔소리와 참견들을 참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주춤한다.
그러면서도 가을이면 색색의 단풍과 봄이면 찬란하던 꽃들, 몇 시간 만에 가장 번화한 도시에서 한적한 시골로 순간 이동하는 변화무쌍함이 그리워 마음이 들뜨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주말도 없이 회사에 다니고, 아이들은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린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리움의 싹을 죽이며 “그래 여기가 낫지”라고 스스로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인정한다.
모순(矛盾)은 말 그대로 창과 방패,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다. 하루하루 얼마나 많은 상황마다 가을바람에 갈대 부대끼듯 내 마음과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지 깨닫는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 한다”는 양귀자 소설 ‘모순’속 문장은 앞뒤가 상충하는 내안의 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서, 가을 탓이라고 변명 하는 그것조차 모순이 되고 만다. 참,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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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민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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