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학교의 학부모들이 마련한 모금행사로 인근에 있는 6채의 집 정원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가든 투어’라는 명칭대로 집안 내부는 볼 수 없었고, 집주인들이 정성들여 가꾸어 놓은 아름다운 정원을 30여명의 학부모들과 함께 천천히 걸으면서, 정원 가꾸기에 대한 정보도 듣고, 희귀한 꽃을 보면 그 꽃의 특징에 대한 설명도 들으면서, 오후 서너 시간을 자연의 향기에 흠뻑 빠져 보냈다. 투어를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기는 데는 집주인들의 친절한 안내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날 구경한 여러 정원 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정원은 파란 잔디와 예쁜 꽃밭에 이어서 집 뒤쪽으로 레드우드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정원이었다. 개인의 집에 그렇게 우거진 숲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큰 대지 한가운데 있는 집안에는 주인부부와 자녀 한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가든 투어를 하고 난 며칠 후 도시 중심가의 거리를 걸어갈 일이 있었다. 주변 거리마다 홈리스로 보이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서 부쩍 많아진 느낌이었다. 텐트를 쳐놓은 사람들, 큰 보따리를 끼고 앉아있는 사람들, 네거리 길목에 서서 운전자들에게 손 내미는 사람들, 길에서 모자 또는 상자를 앞에 놓고 악기를 키거나 노래하는 사람들을 블록마다 볼 수 있었다. 이들 중에서 거리의 악사들은 저녁이 되면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세계적으로 아름답다는 명성을 지닌 도시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불우한 사람들의 망가진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롭고, 마음 아프고, 불편했다. 길 구석 쪽은 사람들의 배설물 흔적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곳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으면서 며칠 전 울창한 레드우드 나무숲에서 맡았던 향기가 떠오르며, 같은 도시 안에 이 같은 양극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에 새삼스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에 나는 파트타임 회계사인 이웃친구 브렌다와 점심을 함께 하게 되었다. 지난 한달 동안에 겪은 두 가지 상반된 경험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서 “브렌다, 세계에서 제일 부자나라인 미국에서, 한쪽에서는 수백만, 수천만 달러 짜리 집에서 품위 있는 인생을 즐기고 있고, 불과 10~20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도시 한가운데에서는 다리 뻗고 잘만한 공간이 없어 길거리에서 자고, 쓰레기를 뒤적여 배를 채우고, 골목길에서 배설을 하고, 이런 사람들이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 해결책을 내놓은 사람이 아무도 없니?”“쉬운 해결책 중 하나로 유럽의 몇 국가처럼 수입의 50%를 세금으로 거두는 정책을 쓰는 것인데, 너부터 그런 정책을 지지하겠어?”라는 대답이 나왔다.

“세금이란 세금은 일전도 틀리지 않게 낸 나 같은 선량한 시민들의 세금을 올릴 생각하지 말고, 10억 달러대의 탈세를 하는 일부 비양심 기업가들의 세금 보고서를 철저히 조사해서 탈세액을 회수, 방지하는 것이 선결문제가 아니겠니?”홈리스 문제는 인도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고, 일반시민들의 생활에 위협이 된다는 현실적인 면에서도 해결이 시급한 문제이다. 정부가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 과감하게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홈리스들 스스로 현재의 상태를 벗어나서 일반 사회로 복귀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결코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만, 누군가가 시작을 해야 하는 당면한 문제라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