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건국의 아버지들’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라를 세웠을 무렵 미국은 지금처럼 강한 국가가 아니었다.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기로 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우려한 것은 외국의 첩자나 이들의 영향권에 있는 인물이 대중을 선동해 대통령직에 오른 후 미국이 아니라 자기를 지지한 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다.
이런 무자격 대통령을 걸러내기 위한 장치가 선거인단 제도다. 미국은 국민이 바로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가 아니라 국민이 선거인단을 뽑고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를 택하고 있다.
이는 국민이 선택한 인물이 과연 미국을 이끌만한 자격을 갖춘 인물인지를 양식 있는 시민들이 다시 한번 심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연방헌법은 유권자가 지지를 표명한 후보를 찍기 위해 나온 선거인이 다른 후보를 찍더라도 이를 규제하는 장치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연방헌법을 만든 사람들은 선거인단이 “잔머리 굴리는 대중 선동가”를 가려낼 의무가 있음을 밝혀 놓고 있다.
수많은 항의에도 불구하고 19일 열린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선거 유세 기간 내내 인종차별과 여성 비하 발언을 일삼고 세계 정세와 국내 현안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은 물론 상습 성추행과 시종일관 된 거짓말로 미국 정치판을 어지럽게 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대통령 자격이 가장 없는 인물이다.
거기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민주당 이메일을 해킹하며 그의 당선을 도운 사실이 CIA와 FBI 조사 결과 드러났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선거인단 제도를 만든 것은 바로 이런 인물을 걸러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막상 선거인단 선거 뚜껑을 열고 보니 트럼프에 표를 던지지 않은 공화당 선거인은 텍사스 출신 2명에 불과했고 오히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기로 했던 워싱턴 출신 대의원 4명이 반란을 일으켜 3명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에, 한 명은 ‘믿음 점박이 독수리’(Faith Spotted Eagle)란 인디언 추장에 표를 던졌다.
트럼프 당선에 필요한 270표를 깨기 위해서는 37명의 공화당 반란표가 필요했는데 이는 기대하기 어려운 숫자였다. 또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이들이 힐러리에게 표를 몰아줘 270표를 넘기지 못하면 대통령 선거 결과는 연방하원이 결정하게 된다. 지금 연방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공화당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트럼프 승리는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선거인단의 반란이 결과를 바꾸리라 기대한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무자격자를 걸러내는 기능을 사실상 상실한 선거인단 제도를 무엇 때문에 그대로 놔두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각 주의 연방 상하원의원 숫자에다 워싱턴DC 대의원 3명 등 총 538명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은 이밖에도 1인 1표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인구 60만의 버몬트 주는 3명의 선거인단을 갖는데 인구 4,000만의 가주는 55명에 불과하다. 인구는 60배가 넘는데 선거인단 수는 20배도 안 된다. 버몬트 주민 표 가치는 가주민의 3배에 달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연방헌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연방의회 2/3와 주정부 3/4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 국민은 왜 있어야 하는지 존재 가치가 희박한 선거인단 제도와 함께 앞으로도 오랜 시일을 보낼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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