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의 시 ‘굽이 돌아가는 길’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올곧게 뻗은 나무들 보다는/ 휘어 자라난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 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중략)…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길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길입니다 /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길입니다”누구나 신년이 되면 새로운 계획을 하고, 올해는 좀 더 잘해봐야겠다며 힘찬 출발을 결심한다. 더 많은 성과를 내고 더 빠른 시간 내에 좋은 결과를 얻고자 거창한 계획표를 그려본다.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보름 간의 겨울방학을 허송세월할 생각 말라며 방학 첫날부터 하루 일과표를 쓰게 하며 일정을 빡빡하게 채워 넣는다.
왠지 한순간이라도 게으르게 보냈다 싶으면 죄책감이 든다. 그러던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시를 듣고는 한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렇지.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지…그동안 왜 그렇게 마음이 조급해서 살아왔던 걸까. 열심히 하긴 한 것 같은데 정작 눈에 보이는 결과는 변변치 않고, 그때마다 나 스스로를 무능하게 평가하곤 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숱하게 들어왔건만 정작 그렇게 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를 질책하고 평가절하했던 건 언제나 나였다.
굽어진 길이 더 깊이 있고, 휘어 자라난 소나무가 더 멋있다는 이 시는 내게 큰 충격이고 가르침이었다.
이제 내 삶은 어떻게 흘러가든 잘 가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다. 결국 내 생애는 선하게 끝날 것이란 것을 믿으며 생을 두고 끝까지 한발짝 씩 걸어가야겠다. 새해에는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길을 걸어야겠다. 그러니 너무 거창한 신년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빛나는 길만이 길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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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영 /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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