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위병이 공기총을 손질하다가 오발사고를 냈다. 동네 어린이의 눈을 다치게 한 것. 당국은 각 언론사에 보도금지를 요청했다. 군의 위상과 장병의 사기저하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사실일까. 그렇다. 40여 년 전 언론통제가 제도화 됐던 유신시절에 있었던 실제 상황이다. 온통 블랙리스트 투성이었다. 수많은 정치인, 지식인, 예술가, 언론인, 심지어 성직자까지 요시찰 인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었다.
해서는 안 되는 것, 행동지침에도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언론사들에 매일 같이 하달되다시피 했던 보도관제 지침이 그 중 하나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절대 안 된다. 그러다보니 대통령 가족과 친인 척관련 보도도 터부가 됐다.
안보문제도 거의 다 보도금지 사항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군(軍)에 대한 비판은 금물이다. 그러다가 결국은 일개 방위병이 저지른 사소한 우발적 사고도 보도관제 목록에 오르는 가관을 연출했던 것이다.
블랙 리스트(black list)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화이트 리스트(white list)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평가 교수단’이다.
본래 취지는 그럴 듯 했다. 국정에 대학교수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소수로 출발했다. 그러던 것이 집권 장기화와 함께 평가 교수단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의 교수다. 그런데 ‘평가 교수단’에 이름이 오르지 못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정도였다. 유신시절 당시 권력은 이 ‘평가 교수단’과 관련해 영단(?)을 내렸다. 문호를 활짝 개방한 것이다.
왜 중앙의 대학교수들로만 구성됐느냐는 지방대 교수들의 불만을 받아들여 지방의 시 단위까지 평가 교수단 제도를 대폭 확대한 것이다.
평가 교수단 제도의 숨은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골치 아픈 인물을 대학가에서 추방하는 거였다. 동시에 연구보조비 지급, 해외연수 등 당근을 통해 교수들을 유신체제 순응자로 길들이려는 것이었다.
블랙 리스트 소리가 요란하다.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1만 명에 가까운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명단을 작성해 놓고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 실체를 부인했었다. 그러다가 주무부처인 문화체 육관광부의 조윤선 장관이 그 존재를 시인하고 말았다. 새삼 주목되는 것은 블랙 리스트와 함께 특혜를 받은 화이트 리스트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블랙 리스트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동원되는 것이 화이트 리스트다. 뭐랄까. 체제 획일화에 한 단계 더 높은 수단이라고 할까. 그리고 그 화이트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은 어쩌면 보다 적극적인 박근혜-최순실게이트의 부역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화융성이라는 이름하에 저질러진 또 다른 헌법유린사태. 자꾸만 40여 년 전의 그 때가 떠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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