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구경을 좋아하는 동물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장터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묘기를 보여주는 재주꾼과 광대들이 한 마당 펼쳐놓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다.
서커스를 국가 사업으로 추진한 첫 나라는 로마다. ‘서커스’라는 말 자체가 ‘둥글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다. 경마를 비롯 각종 행사가 열리던 경기장이 대체로 반달 형태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처음 서커스가 열린 서커스 막시무스는 한 번에 2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형태의 서커스를 탄생시킨 사람은 영국의 필립 애스틀리다. 그는 직경 42피트 크기의 원 안에서 직접 말을 타고 곡예를 하며 관객을 끌었다. 미국에서는 존 리케츠란 사람이 1792년 필라델피아에서 첫 서커스를 공연했으며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도 이를 관람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커스를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벤트로 만드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을 들라면 P T 바넘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곡예사와 동물들을 기차에 싣고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의 사후 그의 서커스 단은 제임스 베일리 서커스단과 합쳐졌고 위스콘신에서 곡예사로 이름을 날리던 5명의 링링 형제 곡예단과 다시 합쳐 ‘링링 형제들과 바넘&베일리 쇼’란 이름을 갖게 됐다.
146년 동안 미국인을 즐겁게 했던 이 쇼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영원히 사라진다. 이 공연단을 소유하고 있는 펠드 엔터테인먼트는 관객과 수입 감소로 더 이상 공연을 할 수 없게 돼 올 5월로 공연을 영구 중단한다고 지난 주말 밝혔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비디오 게임 등 영향으로 젊은 층의 취향이 바뀐 탓이 크지만 동물 보호 단체의 압력도 한 몫을 했다. 동물 복지 연구소 등 동물 권익 단체들은 이 서커스 단이 동물들을 학대했다며 2000년 소송을 제기했으며 펠드는 소송 비용으로만 수 천만 달러를 지출했다. 2013년 승소 판결을 얻어 수백만 달러 배상을 받았지만 이로 인해 나빠진 이미지 제고를 위해 2015년부터 코끼리 등 일부 동물들을 사용하지 않겠다 밝혔다.
그러나 가장 인기 있던 프로였던 코끼리 쇼가 빠지자 가뜩이나 줄던 관객수는 급감했으며 이로 인한 재정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링링 서커스 중단과 거의 동시에 뉴욕에 본부를 둔 빅 애플 서커스도 파산과 함께 청산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샌디에고의 시월드가 가장 인기 있었던 범고래 쇼를 중단했다.
동물을 이용한 서커스가 사양길을 걷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인간들이 주로 공연하는 ‘시르크 뒤 솔레이유’ 같은 단체는 오히려 호황을 누리고 있다. 몬트리올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 단체는 1,300명의 곡예사를 고용하고 있는데 앞으로 매년 450명을 더 고용할 계획이다.
일부 서커스 단이 동물을 학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단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동물 학대라는 이름으로 동물들의 재주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는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동물을 학대하는 서커스를 못 볼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코미디언 워런 홀스틴은 서커스가 사라져도 “백악관에서 성질이 못된 인간이 코끼리를 학대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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