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워싱턴에서는 이색 청문회가 열렸다. 미국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전쟁영웅들에 관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상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동료들이 모두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상황에서 끝까지 교전하다 총상을 입고 포로로 잡혀 있다가 극적을 구출된 것으로 발표된 제시카 린치 일병이었다. 또 거액의 NFL 계약을 뿌리치고 애국심으로 아프간 전쟁에 자원했다가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국민적 영웅이 된 팻 틸먼이었다.
하지만 린치 일병은 청문회에서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고 밝혔다. “나는 람보처럼 싸우지 않았으며 내가 입은 부상은 타고 있던 험비가 뒤집혀져 입은 것”이라며 왜 미군 당국이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진술했다. 청문회에 나온 틸먼의 유족들도 “틸먼이 아군의 오발로 사망했음을 사망 후 5년이 지난 뒤 알게 됐다”며 당국의 ‘계산된 고의적 거짓말’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미국은 명분이 약한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무리수를 서슴지 않았다. 이런 영웅담들을 매스컴은 별다른 확인 과정도 없이 그대로 내보내고 대중들은 뜨겁게 반응한다. 그러면서 진실은 더 이상 중요치 않은 게 돼 버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버지의 깃발’은 이런 전쟁의 허위를 고발한 영화다. 영화는 2차 대전의 끝이 보이지 않던 1945년 일본의 이오지마 섬 정상에 성조기를 꽂는 사진 속 미군 병사들이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가 어떻게 피폐해져 가는지를 보여준다. 만들어진 전쟁영웅들의 비극을 추적한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한국전 당시 대전차포를 이끌고 남하하는 북한의 자주포를 향해 포탄을 쏘아 명중시켰으나 끄떡하지 않자,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하여 수류탄과 휘발유를 넣은 사이다병을 들고 육탄으로 공격해 여러 대를 파괴했다는 심일 소령의 영웅담이 진위 논쟁에 휩싸여 있다. 심일 소령 무용담은 군사정권 시절 교과서에 실렸으며 국정교과서를 추진한 교육부 홈페이지에 ‘진정한 대한민국의 영웅’이라는 제목으로 올라 있기도 하다.
하지만 육군군사연구소는 공적서에 기록된 일자에 북한 자주포가 해당 지역에 진입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며 “공적확인위원회가 사료를 왜곡·과장하고 삭제·추가까지 한 흔적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전쟁영웅을 둘러싼 의혹이 이게 처음은 아니다. 국군 10명이 송악산 전투에서 박격포탄을 안고 적 기관총 진지에 몸을 던져 장렬하게 산화했다는, 이른바 ‘육탄 10용사’ 영웅담도 수십 년 간 조작의혹을 받아왔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는 “전쟁에서의 첫 희생자는 진실”이라고 말했다. 조작되는 무용담들과 만들어지는 전쟁영웅들은 아이스킬로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많은 경우 진실과 함께 희생되는 것은 그러한 무용담의 당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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